
"이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에 대한 책일 뿐 아니라 모든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생의 실종> 저자 이노세 고헤이 교수는 지난 28일 서울 북촌 김영사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해와 소통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5월 한국에 책이 출간된 이후 처음 방한한 이노세 교수는 이날 북토크 행사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이노세 교수는 메이지가쿠인대 교양교육센터에서 문화인류학과 자원봉사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9년부터 장애인들이 지역과 호흡하며 농사를 짓는 '미누마 논 복지농원'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의 책 <야생의 실종>은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노세 교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장애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말 못하는 어린아이를 대하는 일, 부모님이나 배우자, 직장동료와의 관계를 되돌아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지적 장애와 자폐증이 있는 형 료타의 '싯소'를 겪으며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와 그를 뛰어넘는 공존에 대해 고찰한다. '싯소'는 일본어에서 '실종(失踪)' 또는 '질주(疾走)'를 의미하는 발음으로, 저자는 두 의미를 모두 담아 히라가나로 표기했다. 형은 말 없이 집을 나가버려 경찰이나 이웃,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이노세 교수는 형의 '싯소'를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을 뛰어넘는 질주로 이해한다.
료타는 현재 장애인 시설이 아닌 셰어하우스에서 방문 도우미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노세 교수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 집에서 지내거나 시설에 갇혀 생활하는 게 보편적"이라며 "이럴 경우 사회와의 관계가 막혀버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료타가 사회와 연결되는 시도가 언제나 낭만적인 건 아니다. 형이 '싯소'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그의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책은 장애 문제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는 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일이야말로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책에서 언급하는 쓰쿠이야마유리엔 사건이 이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2016년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던 20대 남성이 입소자 19명을 흉기로 살해하고 26명에게 중상을 입힌 장애인 혐오범죄다. 범인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와 연결되려는 노력은 료타와 가족들에게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이노세 교수의 부모는 중학교 졸업여행 비디오 속 료타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양호학교(일본의 특수학교) 대신에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한다. 살고 있는 지역의 정시제 고등학교(야간학교)에 진학하는 데에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노세 교수는 "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양호학교 의무제도라는 게 생겼다"며 "학교에 갈 수 없던 장애아동들을 위한 양호학교를 만들자고 시작됐는데, 일반학교에 다니던 장애아도 멀리 떨어진 양호학교로 옮기도록 하면서 반대운동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젊어서 학생운동을 했던 저희 아버지는 '료타가 작은 몸으로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모습은 마치 내가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랑 맞서 싸우던 모습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책은 형의 발자취를 좇으며 문화인류학의 다양한 주제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문화인류학자 주앙 비엘이 1997년 브라질 정신장애인 격리시설을 조사한 일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등이 언급된다. 이노세 교수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형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게 인류학 이론을 이해시켜준 선생님이었다"며 "인류학 이론이 깊어지면서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가까운 존재인 형을 통해 그제야 이해했다"고 말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그의 최근 연구 주제는 '안피나무(산닥나무)'다. 일본 전통종이 화지의 재료로 쓰이는 이 나무는 인위적 재배가 불가능해 자연에서 채집해야 한다. 이노세 교수는 "고치현에서 안피나무 재배를 시도 중인 노인들 중에는 어려서 만주에 끌려갔던 사람 등 일본 정부가 역사에 남기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분들이 있다"며 "안피나무로 만든 종이는 3000년 간다고 얘기하는데, 그분들의 기억도 안피나무로 연결해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연결'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연결'은 <야생의 실종>의 주제이자 성취다. 책이 나온 뒤 NHK에서 이노세 교수 가족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는데, 이 방송을 본 어느 교사가 '차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한 것. 이 소식을 메일로 전해준 건 교사와 교류하던 특수학교의 학부모로,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노세 교수는 "우연이 겹쳐 비장애인 아이들이 장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책을 쓸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러 독자와 연결될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이노세 교수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형과 함께 쓴 이 이야기가 당신이 살아온 생생한 경험과 한순간에 겹치기를 바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