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천명했지만, 기업의 체감은 여전히 제자리다. 외형적인 개혁 구호는 넘쳐났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괴상한 규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24년 현재 중앙부처가 관리하는 규제는 4만5000건을 넘어섰다. 기술 진보와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실효성을 잃은 규제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낡은 규제들은 신산업의 진입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자,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개혁의 한계, 핵심은 동기 부여
정부가 그동안 규제영향분석, 규제총량제, 규제샌드박스 등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개혁의 칼날이 핵심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 환경, 안전 등 민감 분야는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 근본적인 혁신의 수술을 피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규제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무원에게 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규제 혁파에 나설 유인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지는 조직 문화가 발목을 잡았다.
성공적인 규제 개혁의 열쇠는 결국 관료조직을 움직이는 데 있다. 공무원이 과감하게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하거나 폐지하면 승진, 금전적 보상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반대로 불필요한 규제를 고수하거나 신설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책임과 보상’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실질적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 개혁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뒤따라야 한다. 각 중앙행정부처는 소관 규제를 미국, 일본, EU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분석해 존치 여부, 범위와 강도 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3~5년 단위의 구체적인 ‘규제 개혁 로드맵’을 수립하고, 경제단체의 피드백을 반영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규제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개혁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 점수제’를 도입하고, 법적 근거 없이 현장을 옥죄는 ‘그림자 규제’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명확히 묻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규제개혁은 ‘코스피 5000 시대’ 여는 성장 전략
개혁 과정에서 일부의 저항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와 산업 구조 전반이 대전환기를 맞이한 비상한 시기다. 형식적인 접근으로는 결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없다. 정책 설계 초기부터 정책학은 물론 인공지능(AI), 행태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대통령이 직접 부처 장관에게 규제개혁 추진 상황을 보고받고 점검하여 강력하게 이끌고 가야 한다.
규제개혁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경제 성장 전략’이다.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 결국 우리 기업이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마음껏 투자하고 혁신해 이익을 내야 가능한 이야기다. 현장 중심, 성과 중심의 실질적 규제개혁만이 민간 투자를 자극하고,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다. 이제는 말이 아닌 실행으로 보여줄 때다.
이용규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표준·기술규제학과 학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