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폭염을 겪는 유럽에서 에어컨 설치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탄소 배출 증가 등을 이유로 공공장소 내 에어컨 확대를 주저하는 반면 프랑스 야당에선 에어컨 설치 의무화 법안을 발의 중이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각국 정치권에서는 에어컨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대규모 휴교 사태가 발생한 프랑스에선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에어컨 문제를 들고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에어컨이 충분하지 않아 학교와 병원 등 공공 서비스가 차질을 빚는 것은 정부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2027년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의 유력 주자로 꼽히는 마린 르펜 의원이 소속된 RN은 학교와 병원 등에 에어컨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프랑스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2023년 기준 25%로 인근 국가인 이탈리아(48%)보다 절반가량 낮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대규모로 에어컨을 달면 기기에서 나오는 열기가 거리 온도를 올려 폭염을 악화할 수 있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이 노동당 소속인 런던 시장에게 에어컨 설치를 제한하는 규정을 철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런던은 신축 주택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먼저 환기 설계 등 대안을 검토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해당 규제가 도입된 배경은 에너지 절감이다. 보수당은 “어리석은 규제는 없애야 한다”며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빈곤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라 여름에 유럽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시원해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5% 정도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도 여름 폭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6~7월 남부와 중부 잉글랜드 지역 온도가 35도까지 올랐다. 영국 전체의 이달 평균 기온도 1년 전 동기보다 1.14도 상승했다.
유럽 각국이 에어컨에 거리를 두는 건 에너지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미국식 에어컨 문화에 거부감을 보여왔다. 프랑스에선 장기간 에어컨에 노출되면 호흡기 감염 위험이 있다는 인식도 작지 않다. 하지만 매년 악화하는 폭염 때문에 이 같은 인식이 변하고 있다. 올해 유럽에선 폭염이 지속돼 에어컨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