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Law&Biz)의 [특검 블랙리스트] 연재는 3대 특별검사 수사의 이면을 보도합니다. 단순한 혐의 나열을 넘어, 등장하는 인물과 기업이 특검 수사에 이르게 된 배경과 그들 사이에 얽힌 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도이치모터스· 삼부토건 주가조작,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구명 로비’ 의혹까지 포괄해 특별검사 수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김건희 여사의 ‘계좌관리인’으로 지목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다.
지난 23일 이 전 대표는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중인 민중기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12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고 이튿날에는 순직 해병 관련 의혹 수사중인 이명현 특검 사무실을 찾아 압수물 반환 절차에와 소환 조사에 응했다. 양대 특검이 동시에 한 인물을 소환 조사한 것은 이례적이다.
겉으로는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금융권 인사처럼 보이지만, 정작 대다수 금융업계 인사들은 “이종호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10년 전후로 여의도 일대에서 수차례 법인 명의를 바꾸며 자산운용사 대표를 흉내 내온 인물이라는 후문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운영한 블랙펄인베스트가 사실상 외부 세일즈나 마케팅 없이 특정 자산만 비공개로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 형태로 운영돼온 것으로 본다. 이는 이 전 대표가 김 여사 측 자금을 실명이 아닌 제3자 명의로 대신 관리한 ‘계좌관리인’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과도 맞물린다.
금융권도 모르는 블랙펄…정체는?
블랙펄인베스트는 2025년 기준 자본금 22억원, 운용자산 213억원의 소규모 투자사로 금융당국에 등록돼 있다. 하지만 올 1분기 기준 수수료 수입은 6억6700만원에 불과하고 전체 임직원 수도 10명 남짓에 불과하다.특히 2023년까지는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일임업 인가도 없이 10년 가까이 무인가 상태로 자금을 운용해온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금융당국이 확인에 나선 뒤에야 등록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펄의 운용 전략과 실제 투자 내역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운용사는 주식·채권 등 투자 자산이 어느 정도 외부에 알려지지만 블랙펄은 어떤 자산에 투자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 ‘깜깜이 운용사’"라며 "이런 류의 법인은 종종 주식투자 ‘선수’들이 모여 설립하고 작전을 벌이는 경우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도이치 이어 삼부까지...김건희 계좌 운용한 ‘선수’
실제로 블랙펄 대표였던 이종호 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를 직접 운용해 시세조종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이다. 법원 판결문에는 이 전 대표가 이른바 ‘2차 작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실행한 작전세력은 이종호 전 대표와 김건희 여사 등을 ‘BP패밀리’라 불렀고,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도 함께 움직였다는 법정 증언도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약 22억3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4억원을 확정받았다.하지만 검찰은 2022년 진행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계좌가 실제 시세조종에 활용된 정황이 일부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공모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김 여사의 계좌를 직접 운용한 인물로 지목된 이 전 대표 역시 “김건희 씨와 연락한 적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과 특검이 확보한 통신기록에 따르면, 도이치 수사가 본격화되던 2020년 무렵 이 전 대표와 김 여사 간에 수십 차례 통화 및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전 대표가 “모르는 번호라 받아보니 김 여사 직원이었다”고 해명한 것과 달리, 통화 횟수만 20회 이상인 것으로 특검은 확인했다.
특검은 김 여사 명의 계좌의 거래 내역과 이 전 대표의 진술을 대조한 결과, 과거 검찰 수사와 달리 두 사람 간 공모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단서들이 다수 포착됐다고 보고 있다. 김 여사는 2010~2012년 자신과 가족 명의 계좌 5개를 통해 약 40억원어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으며, 이 중 일부 계좌는 이 전 대표 등에게 넘어가 시세조종에 활용된 것으로 특검은 판단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통신기록 분석 결과 2020년 무렵 일주일 사이 36차례 이상 통화·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진술 번복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검은 이 전 대표가 주요 혐의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거나 번복할 여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와 김 여사 계좌 운용 정황 등을 토대로 직접 연관성을 집중 추적 중이다. 오는 8월 6일 예정된 김 여사 소환 조사에서 이 전 대표 관련 진술이 수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지난해 5월 14일, 해병대 수색대 출신인 그가 소속된 해병대 예비역 채팅방에서 “삼부 체크”라는 메시지를 남긴 직후, 삼부토건 주가는 두 달 만에 5배 가까이 폭등했다. 특검은 이 전 대표가 해당 종목에 대해 사전 정보를 흘리거나 조직적인 매집과 호가 관리를 통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부풀렸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VIP에게 말해보겠다”…김 여사 통하는 ‘로비 창구’
특검은 이 전 대표가 삼부토건, 김 여사, 해병대 특수관계자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이른바 또 다른 작전을 벌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채 상병 순직 사건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를 시도한 연결책 중 한명으로 지목돼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이명현 특별검사팀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사건 직후 군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으나 국방부가 사건을 이첩받은 뒤 그는 혐의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임 소장 측에 “VIP에게 얘기해보겠다”며 사퇴를 만류한 사실이 드러나며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임 전 사단장의 외사촌 동생인 박철완 광주고검 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형은 사건 이후 두 차례 자진 사의를 표명했지만, 누군가가 이를 막았다”며 “형도, 나도 누가 만류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형은 이종호를 모른다고 말한다”고 했지만, 특검은 외부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순직 해병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은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에게 “윗선에 말해보겠다”며 사퇴를 만류했고, 이후 임 전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제외된 정황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18일 특검은 임 전 사단장 자택과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과 주변 인물에서 시작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 인사로 이어지는 구명 로비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임 전 사단장의 부인 A씨의 2023년 7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김 여사 측근과의 직접 연락 정황도 포착됐다. 임 전 사단장과 가족 측은 이 같은 통화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입 여는 순간’ 뒤집힌다…'키맨'과 특검의 운명은
이 전 대표는 오는 30일 김건희 특검의 3차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21일 1차 조사에는 출석했으나 22일과 23일 예정된 후속 조사에는 특검의 조사 방식을 문제삼아 불응했다.특검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진술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혐의와 관련된 질의에 대해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검은 그의 변호인이 동석할 수 있는 30일을 최종 소환일로 확정했다. 앞선 조사에서는 변호인 없이 단독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시세조종과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구명 로비 등 의혹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돼 왔다. 그가 침묵을 깨고 진술에 나설 경우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특검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