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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양혜왕' 편을 보면 제나라 선왕과 맹자 사이의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제물로 쓰기 위해 소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왕의 눈에 끌려가던 그 소가 겁에 질려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왕은 그 사람에게 소를 풀어주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럼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왕이 "그건 아니고 소를 양으로 바꾸면 된다"고 명했다. 주변에선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다는 것인가'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맹자가 나서 "난 왕이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를 안다. 그건 바로 왕이 소는 봤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고사성어로는 '이양역우'(以羊易牛)라고 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왕이 소를 양으로 바꾸라 한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둘의 차이는 우연히 왕이 보고 불쌍한 감정을 느꼈는지 여부일 뿐, 어차피 제물로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소는 봤다는 이유로 불쌍하고, 양은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쌍하지 않다는 것인가. 소 대신 갑자기 끌려가야 하는 양의 입장은 또 어떠한가. 단지 불쌍한 모습을 보거나 보지 않았다는 우연한 사정만으로 죽을 대상이 바뀐다는 게 타당한 걸까.
이처럼 사람은 종종 주관적 감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과 결정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감정에 따라 어떤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그 결정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조너던 하이트는 그의 명저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에서 사람이 사고하고 의사 결정하는 과정을 코끼리와 그 위에 올라탄 기수에 비유해 설명한다. 여기서 코끼리는 직관, 감정, 선입견 등을, 기수는 논리, 추론, 이성 등을 상징한다.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는 자신이 코끼리를 조정하며 코끼리가 움직일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기수는 코끼리가 움직이려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며 코끼리가 방향을 정하는 순간, 마치 그것이 자신의 명령을 따른 것처럼 사후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이성적 추론으로 사고하고 결정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미 직관이나 감정, 선입견 등에 따라 내심 결정을 내려 놓고 이를 마치 이성과 논리에 의한 것처럼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도의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했다는 법률가들의 업무에선 이런 경우가 없을까? 그중에서도 특히 논리적 사고와 판단을 하도록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는 법관은 재판에서 과연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의사 결정할까? 법관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가.
대부분 사람은 적어도 법관은 객관적 증거에 기초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미국연방항소법원 판사이자 시카고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리차드 포스너는 그의 저서 '법관은 어떻게 사고하는가'에서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포스너는 법관 역시 법이 아니라 상당 부분 재량에 의해 의사 결정하는데, 그 재량은 당사자에 대한 인상, 주관적 감정, 호불호 등 선입견에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법관도 법관 나름이고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봐도 논리와 이성만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이 법관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치열한 사건에서 판사의 심증은 누가 더 의로운가, 누가 더 불쌍한가 하는 순간적 감정과 직관에 따라 의외로 쉽게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이 한번 결정되면, 사후적으로 법리와 추론을 통해 그 판단을 합리적인 것처럼 설명할 논거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판결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실무를 해보면 그렇게 진행되는 재판이 많다는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법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판부에 보여지는 직관적인 인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소송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적대적인 당사자를 법정으로 불러 그 주장을 탄핵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만일 판사가 그를 보고 마치 제 선왕이 소를 보고 측은함을 느낀 것처럼 흔들린다면, 판사가 올라탄 직관이라는 코끼리가 상대방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면, 이를 되돌리는 건 결코 쉽지 않기에 이해득실을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오로지 이성과 논리만으로 재판한다면 재판을 인공지능(AI)에 맡기자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구체적 타당성, 재량, (또는 무엇으로 부르건) 직관이나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직관이나 감정에 따른 재판이 결코 바람직할 수는 없겠으나 현실적으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 직관과 이성이 함께 작용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균형 잡힌 바람직한 결론이 도출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내 의뢰인을 양이 아니라 소로 만들지, 판사가 올라탄 코끼리가 나를 향하게 만들지는 법리뿐 아니라 직관적인 부분까지 잘 활용하는 변호사가 고민할 몫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