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강업
한국 철강업계가 대대적인 탈탄소 기술 개발에 나섰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양대 철강사는 수소환원제철 개발과 전기로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정부가 수소환원제철 실증 연구개발(R&D)에 예산 지원을 확정하면서 민관 합동의 기술 실증이 본격화됐다. 다만 전기로 전환에 따른 전력비 부담 등 경제성 확보 과제도 만만치 않아 업계는 전기요금 지원 등 정책 보완을 촉구하고 있다.철강산업은 석탄을 대량 사용하는 고로(용광로) 공정 특성상 국내 온실가스배출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로 철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미래 생존을 건 승부수로 택했다. 정부도 2030년까지 국비 3088억 원을 포함해 포스코·현대제철 등 민간 투자금을 더해 총 8146억 원을 투입하는 수소환원제출 공동 실증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6월 26일 완료했다.
포스코·현대제철, 수소환원제철 ‘게임체인저’ 도전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며, 기존 고로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95% 이상 감축할 수 있는 혁신기술로 평가받는다. 수소환원제철은 개발·전환 비용이 막대한 만큼(포스코 추산 54조 원, 철강업계 전체 68조5000억 원) 정부의 초기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은 대단위 철강 탈탄소 기술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 중이며, 한국도 뒤늦게나마 R&D 재정 지원을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미 30만 톤급 수소환원 파일럿 공정 설계를 완료하고, 2020년대 후반 착공을 목표로 실증 플랜트 구축에 착수했다. 실증 단계에서는 일단 그레이 수소(천연가스 개질 수소)를 활용해 2030년대 중반 상용화를 달성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또 한국산학연협회 협력을 통해 기존 고로용 철원료(철광석) 대신 수소환원용 직접환원철(HBI)을 확보하기 위한 해외 사업에도 나섰다. 호주 서호주 지역에 연 200만 톤 규모의 HBI 공장을 2028년에 착공해 2031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이며, 점차 생산능력을 1200만 톤까지 확대해 수소환원제철 공정의 안정적 원료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2022년 호주 정부로부터 부지를 임대받고 프랑스 에너지 기업 엔지 등과 그린 수소 공급 파트너십을 맺는 등 해외에서 저탄소 철원료를 생산해 국내로 들여올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공동 투자해 전략적 해외 생산거점을 구축한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 루이지애나주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8조 원을 투입해 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를 2026년 착공, 2029년 완공할 계획이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일관 제철소로, 자동차용 고급 강판을 일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체 투자금의 절반은 현대제철 등 계열사와 외부 투자자, 그중 포스코가 핵심 투자자로 참여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지 수요 대응과 탄소저감 전환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검증된 전기로 체계를 국내에도 빠르게 확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해외투자를 통해 선진 운영 경험을 쌓은 뒤 국내 설비를 혁신하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 전기요금 부담을 우회하는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현대제철은 한국조선해양, 롯데정밀화학, 포스코 등과 함께 ‘암모니아 추진선·벙커링선 개발’ 및 청정 암모니아 공급망 구축 협력에 참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용 청정수소·암모니아 조달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전기로 확대 속 전력난 과제…정책 지원은 미흡
철강사의 전기로 전환은 필연적으로 전력 사용량의 급증을 야기한다. 최근 한국전력의 잇따른 요금 인상으로 이미 전기로 사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제철은 현재 국내에서만 전기로 11기를 운영 중이지만,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분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고 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일곱 차례 인상되며 kWh당 105원에서 182원으로 73%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전기로 제강사들은 주간 가동을 중단하고 심야에만 조업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전기요금 지원 등 직접적 산업 보조는 전무한 상황이라 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심지어 미국 상무부가 최근 “한국이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해 철강 덤핑을 조장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국내 철강업계는 “이는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지금은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반박했다. 철강업계는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에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향후 수소환원제철을 상용화하는 데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수소의 대량생산과 공급망 확보가 전제돼야 하며, 완전한 무탄소 공정을 위해서는 그린 수소(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은 아직도 미흡하다. 이에 포스코 등은 해외 그린 수소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며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을 모색 중이다. 또 초기 실증 단계에서는 불가피하게 화석연료 기반 수소(블루·그레이)를 활용하게 돼 탄소배출 저감률이 100%가 아닌 점 등은 단계적 보완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의 핵심 설비인 환원로 개발과 공정 안정화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철강업계는 탄소중립 전환을 생존 문제로 인식하며 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탄소중립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 확대와 무역장벽 강화 흐름 속에서 향후 10~20년간 철강사의 경쟁력은 누가 먼저 친환경 철강 체제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은 미래 철강 패권이 걸린 프로젝트”라며 “정부의 R&D 지원과 함께 전력 인프라와 에너지 정책 전반에서 산업 경쟁력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