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탈탄소’ 산업을 미래 성장 엔진으로 주목하고 있다. 수소, 재생에너지, 배터리, 탄소포집 및 활용·저장(CCUS) 기술 등이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고 산업을 재편하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해서다. 유럽과 미국·일본·중국은 이미 산업 전략의 중심에 청정기술을 배치하고 세제, 보조금, 인허가 간소화 등 파격적 유인책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한국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을 공식화하며 본격적인 탈탄소 산업 육성에 돌입했다.
새 정부는 탈탄소 산업 육성을 유인책과 규제 완화라는 두 축으로 추진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월 17일 인사청문회에서 한국판 IRA로 불리는 생산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통상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인센티브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취지다.
김 장관은 “해외 주요국은 투자 보조금 지급, 투자·생산 세액공제 제공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을 육성 중”이라며 “우리도 주요국 대비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고,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내 생산 물품이 국내에서 소비되면 세금을 공제해주는 국내생산 촉진 세제 도입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탈탄소 산업을 포함한 국가전략산업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판매할 경우 생산 비용 최대 30% 수준의 세액공제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도 입법 보조...탈탄소 유인 정책 지원
국회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12일 반도체, 2차전지, 청정수소 등 국가전략산업의 국내 생산 및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대 30%의 법인세 공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탄소중립 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 특별조치법안’도 주목해야 한다. 탄소중립산업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탄소중립 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을 위해 발의됐다. 탄소중립 특화단지 지정 및 인허가 간소화, 국가 연구개발(R&D) 우선 편성, 규제 샌드박스 적용, 입지·세제·금융 패키지 제공 등을 골자로 한다.
박지혜 의원은 한경ESG에 “지난 정부에서는 해당 법안에 대한 반대가 심해 상임위 심사(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정부는 탈탄소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만큼 절충안을 마련해 법안 심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내 생산에 대한 지원이 업계 최대 요구인 만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도 힘을 실을 방침이다.
산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적자 기업은 세액공제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국 IRA처럼 세액공제 직접환급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IRA는 적자 기업에도 현금 보조가 가능해 탈탄소 투자를 늘릴 수 있었다”며 “정책 실효성을 높이려면 한국에서도 유사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EU·일본·중국의 경쟁적 육성
실제 미국은 IRA를 통해 태양광, 배터리 등 탈탄소 산업에 직접 보조해왔다. 최근 트럼프 감세법(OBBBA)으로 일부 제도 속도가 조절됐으나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탈탄소 투자가 급증한 배경은 IRA에 있다. 나아가 미국은 탈탄소 제품 소비 증대를 위해 전기차 구매 시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며 수요도 견인했다.
유럽연합(EU)도 탄소중립과 IRA에 대응해 2024년 6월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마련했다. 2030년까지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주요 녹색기술의 40%를 역내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EU는 지난 6월 회원국이 탈탄소 사업에 2030년 연말까지 2억 유로(약 3200억 원)의 직접 보조금 제공, 세액공제, 대출 보증과 이자율 감면 등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 보조금 규정을 변경했다.
일본은 2023년 5월 GX(녹색 전환) 추진법을 제정하고,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의 기술개발 및 투자전략을 구체화했다. 일본 정부는 배터리, 태양광, 수소를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지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보조금 중심의 일시적 지원보다 산업별 탈탄소 로드맵에 따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초격차를 구축하고 있다. 2024년 태양광 신규 설치는 277GW를 기록하며 누적 설치 용량은 886?GW에 달했고, 전기차(신에너지차) 연간 생산은 약 1290만 대를 돌파했다. 정부는 신에너지차, 에너지 저장, 태양광 등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보조금과 내수 진작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규제에서 유인으로”…성과 기반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기조 전환을 산업 전환 정책의 토대로 평가한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정책이 규제 중심이었다면, 새 정부가 준비 중인 정책은 보조금과 세제를 중심으로 한 탈탄소 투자 유인형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탈탄소 성과를 기반으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글로벌 청정산업 경쟁 구도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도 공격적인 산업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면서도 “탈탄소에 대한 분명한 성과를 기반으로 기업을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탈탄소 경쟁은 이제 ‘규제’가 아니라 ‘유인’이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기업의 탈탄소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정부는 세금과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한국도 규제를 넘어선 능동적 탈탄소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