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 목록에 작품 한 점이 추가됐다. 작품명은 ‘중간 유형 ? 한 쌍의 현신, 그윈플레인과 데아’(The Intermediate ? Pair Incarnate, Gwynplaine and Dea). 양혜규 작가가 2015년 제작한 조형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은 이번 기증에 뛸 듯이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작품 가격이 억대를 호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국립현대미술관에 있어 2010년대 중반 양혜규의 작품이 ‘빠진 퍼즐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양혜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각예술가 중 한명이다. 이런 한국 대표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확보하는 건 한국 현대미술을 보존하고 알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의무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 탓에 작품을 구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대부호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 세법 개정 등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지금 높은 평가를 받는 생존 작가의 주요 작품을 기증받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컬렉터 최정윤 씨가 기증을 결심한 건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다. 최근 만난 그는 “백남준을 비롯한 한국 출신 주요 작가들은 국내 미술관보다 해외 미술관에서 주요 작품을 더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입을 뗐다.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기증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대규모 작품 기증이 잦은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미술품 기증이 활발하지 않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최씨는 수 년 전부터 ‘미술관에 기증하기 위한 컬렉션’을 따로 수집해 왔고, 대구미술관에도 작품을 기증하는 등 본격적인 기부를 시작했다.

이번에 기증한 양혜규의 작품도 이처럼 미술관 기증을 염두에 두고 구입한 것이다. 최씨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인 양혜규를 후원하고 더 많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주요 미술관에 기증한다는 건 그 작가를 후원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술관에서 그 작가의 전시를 열기가 더 쉬워진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지금 양혜규 작가는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양 작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기증 과정에서 느낀 점을 묻자 최씨는 “국공립미술관들이 지금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미술관 실무자들의 전문성이나 열의는 충분했지만, 복잡한 행정과 지난한 서류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해외 미술관에 비해 국내 미술관에는 여러 제도적 제약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험정신과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예산 부족, 잦은 인사 이동 등 지금 국내 미술관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해외 미술관과의 경쟁은 갈수록 어려워질 겁니다.”
이번에 기증된 작품은 가로세로 1.8m에 육박하는 대형 작품이다. 최씨는 “양혜규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난 중요한 시기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기쁘다”며 "작품 기증이 작품을 갖고 있는 것 못지 않게 기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그는 “더 많은 국내 컬렉터들이 미술관에 좋은 작품을 기증해 이런 기쁨을 만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