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회는 각 주주집단의 대리전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더불어민주당이 11일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집중투표제 등을 추가로 담기 위한 상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자 경제계에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날 법안 통과 전 경제계 등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선 이사회 파행과 기업가치 훼손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법사위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재계 우려가 과도하다”며 법안 통과 시점을 이르면 23일로 제시했다.
◇정보 유출 우려 커지는 기업들
이날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선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법안,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관련 법안이 논의됐다. 두 개정안은 이달 3일 국회를 통과한 다른 상법과 달리 여야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처리되지 않았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는 주주총회에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뽑는 감사위원을 늘리자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주당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다. 이사회 구성 등에 영향을 미칠 내용들이다.이날 공청회에서 재계의 우려는 주로 외국계 자본의 기업 침탈에 집중됐다. 감사위원은 회사에 영업 보고를 요구하거나 조사할 수 있다. 회사 경영 기밀에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이사회 소집 등도 요구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법안까지 통과되면 한국 기업이 헤지펀드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4년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소버린은 감사위원 선출 시 3% 룰 적용을 피하기 위해 보유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로 분산한 뒤 SK를 공격했다.
주요 기업 정보 등의 유출 우려도 크다.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은 2019년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를 상대로 경쟁사 최고경영자(CEO) 등을 감사위원 후보로 주주 제안을 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확대되면 이런 외부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해 기밀을 취득할 수 있다”며 “중국 기업에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공청회에선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가 집중투표제와 결합하면 기업의 성장 생태계가 마비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상장폐지, 기업 분할, 자산 매각에 나설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 성장을 이끈다면서 정작 기업들 크기는 계속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全 감사위원 분리선출” 주장까지
여당 측 참가자들은 민주당 의원과 재계 우려가 과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현재 추진되는 제도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도 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기업들이 분리 선출되지 않는 감사위원을 늘릴 수 있어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 선출할 필요가 있다”며 “집중투표제도 앞서 제도를 도입한 일부 금융회사 등을 따졌을 때 지배권 상실 가능성은 매우 드물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이 “‘공포 마케팅’이 아닌가”라는 질의를 반복했다.재계가 요구한 배임죄 완화는 이날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기업인 책임을 더는 배임죄 개정도 논의하기로 했다”며 “(이런 합의가) 전부 무시된 채 2주 만에 집중투표제 등이 다시 논의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를 제외하면 배임죄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사위는 소위원회 날짜를 잡아 야당과 협상을 이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상임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뤄진다면 오는 23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사위 18석 중 10석을 가지고 있다.
이시은/최해련 기자 s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