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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찢남' 이원석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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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찢남' 이원석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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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예술의전당 음악축제 스튜디오페이즈(studioPHASE) 촬영을 갔다가 전혀 예고 없이 한 연주자와 마주쳤다. 촬영을 마치고 객석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어…?” 눈을 의심했다. 금호 영재 시절에 잠깐 스쳐 지나갔던 그 소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넘치는 에너지에 활기찬 미소, 뭔가 한껏 업그레이드된 아우라. 타악기 주자 이원석이었다. 오랜만의 재회가 이렇게 반가워질 줄은 몰랐다. 그날 공연은 좀 특별했다.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리즘 작품이 무대 위에서 시청각적 향연으로 재해석되었고 이원석은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연출감독도 겸한 멀티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화려한 무대 편성, 계속 바뀌는 영상, 숨 막히는 연주에 긴장을 풀 새도 없이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이 친구, 대체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지?’ 멋졌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는 이미 KBS교향악단의 수석 팀파니스트였다. 정기연주회 도중 팀파니 한 세트를 이루는 북 네 개 중 하나가 파손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남은 세 개로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는 일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팀찢남’(팀파니 찢은 남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는데 영상을 찾아보니 역시 그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우연한 재회를 시작으로 우리는 이후로도 가끔 만났다. 만날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전혀 엉뚱한 주제까지 해박한 지식을 쏟아낸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술잔을 들고 불꽃같이 논다. 지적인 광기랄까, 천재적 장난기랄까. 한마디로 삶도 연주도 드라마틱한 재주꾼이다. 이원석은 그저 타악기를 잘 치는 연주자가 아니다. 리듬을 연출하고 음향을 디자인하며 무대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람이다. 무심결에 재회한 인연이 이렇게 풍성하게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놀라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또 한 번 팀파니를 찢을 준비가 되어 있다.




    셋셋셋(SETSETSET),
    타고난 음악가들이 만든 즉흥의 우주


    미친 연주력과 반짝이는 에너지로 가득한 이 연주자가 어느 날 평창동 스튜디오 녹음실로 놀러 오라고 했다. 재미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곳에서 ‘셋셋셋(SETSETSET)’이라는 팀명을 만들어 놓고 세 천재가 음반 녹음을 위해 연습하는 광경을 마주했을 때, ‘대박’이라는 말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김건재, 김종국, 이원석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으로, 장르의 구분도 형식도 두지 않고 즉흥연주를 통해 오직 셋의 감각과 호흡으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셋은 숫자 3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그룹을 이루는 세 아티스트(김건재, 김종국, 이원석)를 상징한다. 또한 세 개의 독립된 빛이 모여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듯 셋셋셋은 각기 다른 음악적 색깔과 개성을 가진 세 명이 만나 하나의 음악 우주를 펼쳐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3은 완성과 조화를 상징하는 숫자이니 시작과 중간, 끝이 어우러져 음악이 만들어지는 순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셋셋셋’이라고 발음했을 때 경쾌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다.




    셋셋셋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로서는 자연스레 트라이포드(카메라 삼각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셋셋셋은 마치 트라이포드처럼 견고한 삼각형을 이루는 세 점이 아닐까. 트라이포드라는 게 세 개의 점이 모여 견고한 삼각형을 이루고 그 위에 세상을 담아내는 카메라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듯, 각각의 다리는 독립적이지만 셋이 만나야만 비로소 균형과 안정 그리고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트라이포드가 이렇게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지탱하듯 셋셋셋의 세 음악가는 서로를 받쳐주며 완전한 음악 세계를 만들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각 다리는 미세하게 조율되고 때로는 새로운 각도로 펴지고 접히며 서로의 리듬을 맞추며, 그 안에서 그들은 함께 빛나고 때로는 그 빛이 공간을 가르며 청중의 마음속 깊이 닿을 것이다. 셋셋셋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서로 다른 세계를 지닌 세 아티스트가 만나 안정과 자유가 공존하는 완전한 음악의 삼각형을 만들어간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멤버 김종국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BTS의 RM을 비롯한 세계적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재즈 드러머이다. 김건재는 밴드 실리카겔과 시라카미 우즈의 멤버로 록과 일렉트로닉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클래식 타악기 주자 이원석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음악계의 마블 히어로들이 한데 뭉친 느낌이 들었다.


    셋셋셋은 단순히 연주하는 그룹이 아니다. 대안적 악기 제작, 일상 사물의 사운드 탐색, 실험적인 음향 구조 등 기존 틀을 벗어난 창조적 소통을 이어간다. 녹음 상황을 보고 있자니 이들의 연주는 직감, 감각으로 이루어진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 같았다. 어느 순간엔가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까지도 들게 만드는…. 그들은 녹음실에서 순간의 영감을 포착하는 자연 현상처럼 빛이 난다. 이 현장감은 단순한 녹음을 넘어 일종의 공명하는 에너지 장(場)을 만들어내는데, 보고 있노라면 질투가 날 지경이다. 스튜디오 엔지니어조차 코멘트를 멈추고 숨죽이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호흡과 교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눈빛만으로 악기를 바꾸고 장르의 경계를 단번에 뛰어넘는 그들의 즉흥성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셋셋셋의 음악은 한 공간에 모인 세 영혼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생명체 같아 그 순간을 함께 숨 쉬고 느끼며 완전한 몰입 상태를 보여준다.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답을 소리와 몸짓으로 보여주는 셋셋셋은 아직 음반이 나오기 전이지만 현대음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그들의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음악 세계가 더욱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하며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우주를 울리는 감각의 마법사

    타악기 주자 이원석은 클래식의 전통과 동시대 음악의 미래를 오가는 예술가다. 전통 오케스트라 무대는 물론 다원예술, 영상, 전자음향이 교차하는 경계 너머에서 21세기 리사이틀리스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 미국 커티스 음악원과 템플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쳤다. 금호 영재, 영아티스트, 라이징스타를 다 거치면서 금호아트홀의 역사와 함께한 이원석은 클래식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의 최전선에서 주목받는 연주자로 자리잡았다. 올리버 너슨, 데이비드 랑, 제니퍼 히그던, 진은숙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과 가진 협업은 그가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음악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창작자의 감각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뉴욕 스트링 오케스트라, 브리튼-피어스 오케스트라 등에서 수석으로 활동했으며, 베르비에 페스티벌, 올드버러 페스티벌 등 유수의 국제무대에 초청되어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이원석의 음악은 늘 공간과 장르를 넘나든다. 전통적인 콘서트홀을 벗어나 대안적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시도하고, 작곡가나 미디어 아티스트, 영상 디자이너 등과 협업을 통해 음악을 하나의 시청각적 경험으로 재구성한다. ‘음악은 21세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원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무대에서 소리로, 몸으로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



    <ALTER-ING (무언가) = 變(변)-하는 (某物)>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스페이스> 시리즈로 7월 31일에는 이원석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한층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공연 제목부터 평범하지 않다 싶더니 영상 체크하는 날 함께 있으면서 보니 꽤 재미있었다. 이 제목은 사물이나 개념, 정체성 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임을 암시한다.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관념이나 불교의 무상(無常) 개념, 아니면 주역(周易)과도 상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이 공연을 통해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무언가를 탐색하고 그것이 변화하는 찰나의 상태를 전자음향과 영상 그리고 타악기 음향을 통해 감각적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변화의 순간들을 시각화하고 음향의 구조를 해체하며 음악을 하나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표이다.

    이 공연은 전통적인 리사이틀의 형식을 벗어난 하나의 몰입형 예술 경험에 가깝다. 타악기와 전자음, 그리고 시청각적 요소들이 다층적으로 어우러지며 관객은 듣는 것과 보는 것 사이를 유영하게 된다. 오브제처럼 배치된 무대의 많은 악기와 공간 및 실험적인 조명과 영상은 이원석이라는 연주자의 또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들이다. 연주자가 말했듯이 21세기 리사이틀리스트가 자신의 내면과 음악적 철학 그리고 매체에 대한 고민을 무대 위에 구현한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선언이 될 것이다. 이원석은 21세기의 리사이틀리스트는 단순히 연주자가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예술가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공연은 바로 그 선언이자 실천이다. 기술적 정교함, 감각적 구성력, 개념적 통찰이 어우러진 이번 무대는 우리가 알고 있던 클래식 공연의 문법을 낯설게 뒤흔든다. 《ALTER-ING》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경계들을 흔들어 놓는다. 소리와 이미지, 음악과 공간,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무엇인가가 지금 눈앞에서 변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



    이원석은 이 공연에서 타악기적으로 해석한 피아노, 마림바, 그리고 즉흥 퍼포먼스를 실황으로 펼치며 여기에 전자음향과 영상을 접목한 다원적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존 케이지,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헬무트 라헨만 등 동시대 음악의 경계를 넓혀온 작곡가들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사카모토 류이치, 오노 요코의 곡 등 클래식의 범주 자체를 넘어서는 작품들도 다룬다. 이와 함께 이원석 자신과 작곡가 이현민이 쓴 신작 두 곡이 초연된다.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이현민이 작곡과 영상 작업으로 참여하며, 작곡가 이본이 사운드 디자인으로 협업으로 참여해 공연의 입체적 감각을 더욱 극대화한다.

    이날 선보이는 이현민 작가의 ‘어스애프터어스’(Earth[: us]AfterUs[: earth])는 제목부터 하나의 텍스트 실험이자 메시지의 퍼즐처럼 다가온다. Earth[: us] ? 지구 안에 포함된 ‘우리’, AfterUs[: earth] ? 우리가 사라진 이후 다시 드러나는 지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중적인 괄호로 감싸진 구조는 지구(Earth)와 인간(us)의 관계가 서로를 품고 또 벗어나는 반복적인 순환임을 시사한다. ‘지구는 언제부터 우리 것이었고, 언제까지 우리일 수 있는가?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지구는 여전히 지구일까?’라고 묻는 게 아닐까?

    《ALTER-ING》은 결국 결과물이 아닌 과정 그 자체를 드러내는 무대다. 음악, 영상, 움직임, 사운드 디자인이 서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우리가 믿어온 감각의 질서와 청중의 위치조차 변화하는 중임을 보여준다. 이 무대는 말한다 ? ‘무언가’는 지금,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구본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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