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관영 매체에 대외 활동을 공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실각설’을 의식한 행보로 분석된다. 물샐틈없을 것 같던 시 주석의 권력이 흔들리는 듯한 조짐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다음달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시 주석의 권부 내 위상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루에 공장, 항일 유적지 시찰
이날 신화통신·인민일보·중국중앙TV(CCTV) 등 중국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이 전날 산시성 양취안에 있는 산업용 밸브 공장과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 유적지를 찾았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시 주석은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항일 유적지에선 헌화를 하고 1940년 공산당군이 일본군과 싸운 백단대전 기념관을 둘러봤다.이는 시 주석의 ‘권력 이상설’을 의식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산당은 다음달 권력 구조를 재정비하는 4중전회를 열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해외에선 지난 4월께부터 시 주석 실각설이 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기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플린은 최근 X(옛 트위터)에 “중국에서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중국 권력 서열 6위 딩쉐샹 부총리, 천지닝 상하이 당서기,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의 사진을 게시했다. 이들에게 권력이 옮겨가고 있다고 암시한 것이다. 그레고리 슬레이턴 전 버뮤다 주재 미국 대사는 뉴욕포스트에 “올해 8월 시 주석이 건강 문제로 4중전회에서 물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앙군사위 서열 5위인 먀오화와 웨이펑허·리상푸 전 국방장관 등 시 주석 측근이 부패 혐의로 실각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군 서열 2위인 장유샤 부주석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렸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달 6~7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불참한 것도 권력 이상설을 뒷받침하는 사건으로 꼽힌다. 2012년 집권 후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 주석이 미·중 갈등 속에서 ‘반미 연대’를 과시할 수 있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불참한 건 이례적 행보라는 점에서다.
◇“점진적 권한 이양” 가능성
중국과 한국 외교가에선 시 주석 실각설의 신뢰도를 낮게 보는 편이다. 시 주석이 4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3개국을 순방한 데 이어 5월엔 러시아를, 6월엔 중앙아시아 5개국을 다녀오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국내 권력 기반이 약하다면 이런 순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9월 항일 전승절 행사에 한국 대통령을 초청한 점,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한 점 등도 시 주석 권력이 굳건하다는 관측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호주 싱크탱크 로이연구소는 “시 주석은 경제·군사·외교 수단을 모두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의 장기 목표를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화통신도 최근 시 주석이 전승절 때 특별 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CTV는 지난 1일 시 주석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 학습회의를 주재하는 모습과 권력 투쟁설이 도는 장유샤 부주석 등이 시 주석 말을 받아쓰는 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베이징 외교가 관계자는 “4중전회에서 후임자 지명 등이 이뤄진다면 열병식 연설 발표 등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현재 중국 시스템에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중국 내 정치와 군사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착오”라고 말했다.
다만 시 주석 권력이 분산되는 듯한 징후도 있다.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달 30일 당 중앙 정책 결정 의사협조기구를 설립했다. 이 기구에 대해 커다란 업무를 도모하고 논의하는 곳으로 건너뛸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엔 공산당 원로들이 참여한다. 원로의 입김이 커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정치분석가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시 주석의 은퇴 준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질서 있는 퇴진’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빅터 시 UC샌디에이고 교수는 이 매체에 “시 주석이 당 총서기, 군 최고사령관, 국가주석 등 3대 직위 중 하나를 비슷한 나이의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위임하면서 후계 문제를 5~10년 미루려는 것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