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마음은 병들었다는 말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정신건강 상담 인프라가 확충되고, 위기 개입 시스템도 강화되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의 일상에 닿는 체감 변화는 미미하다. 수치는 줄지 않고 있고, 마음은 여전히 얼어 있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구조적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신호 이전의 감정’에 먼저 다가서고, 그 감정이 터져 나온 이후에는 위험을 기술적으로 감지하고 개입하는 이중의 안전망이 작동해야 한다.
뮤지컬 <메리골드>는 이 복잡한 질문에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답한다. “죽고 싶다고 느낄 때, 나는 누구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자살 충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꽃말이 ‘절망 속의 희망’인 메리골드는, 상실과 외로움, 오해와 단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관계와 회복, 공감의 여지를 묻는다. 무대 위 고백과 침묵, 작은 연결의 순간들은 언어보다 깊은 정서를 자극하며 관객 각자의 내면을 두드린다.
<메리골드>는 단순한 위로 그 이상을 제시한다. 고통을 ‘말해도 되는 것’으로 허락하는 예술의 힘, 감정을 표현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공공적 공간의 역할을 보여준다. 통계로 환산되기 전, 사람들의 표정과 침묵, 무표정 속에 깃든 감정을 예술은 감지하고 품어낸다. 하지만 예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기술과 시스템, 그리고 민간의 새로운 상상력이 더해져야 한다. 그 과정에는 정서, 과학, 기술, 문화가 함께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민간 주도의 시도가 바로 ‘마인드 SOS’다.
마인드 SOS는 한국 사회의 자살률 1위라는 현실 속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히 의학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자 시작된 멘탈헬스 캠페인 브랜드다. 이 프로젝트는 마인드풀커넥트가 기획·운영하며,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장동선 뇌과학자,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혜민 자살예방협회 홍보위원장, 나종호 예일대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공 리더들이 함께 참여해 그 무게와 실천력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감정 기반의 공공 시스템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사회안전망 중 하나라는 인식 아래, 기술적 도구와 공감 기반 예술, 그리고 시민 참여형 회복 플랫폼을 종합적으로 엮어내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마인드 SOS의 목표는 단순한 조기 개입을 넘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사회가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마음 ON STAGE’라는 오픈 마이크 행사였다. 누구나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고, 리스너들과 감정을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내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피드백처럼, 고통을 드러내고 공감받을 수 있는 감정의 무대로 자리잡고 있다.
뮤지컬 <메리골드>는 ‘마음 ON STAGE’와 유사성을 갖는다. <메리골드>에서 무대 위 배우들이 자신의 상처를 담은 캐릭터로 고백하고 회복하듯, 오픈 마이크에 선 참가자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며 관객과 연결된다. 이건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삶의 이유’를 함께 묻는 감정 공동체의 실천이다.
이 공감의 흐름은 ‘마음 캠프’로도 확장된다. 마인드 SOS가 운영하는 마음 캠프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전문 상담가의 안내 아래 감정을 나누고 회복의 실마리를 찾는 집단 프로그램이다. 특히 <메리골드>에서 펼쳐지는 상실, 관계, 회복의 서사는 마음 캠프가 지향하는 상담 구조와 매우 닮아있다. 이야기와 감정의 공유, 공감의 힘, 다시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 ? 공연장과 상담실이 서로를 비추는 순간이다.
결국 마인드 SOS는 감정과 구조, 표현과 시스템을 연결하는 이중 안전망을 지향한다. 예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시스템이 그 신호를 실질적으로 감지하고 개입하는 구조다. <메리골드>는 그 메시지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마음 ON STAGE와 마음 캠프는 일상의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다.
예술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를 말하게 하고, 그 문제를 함께 바라보게 하며, 치유의 시작점을 제공한다. <메리골드>는 그것을 증명한다. 고통은 개인의 이상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중심에서 뮤지컬 <메리골드>는 조용히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 살아갈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은 단지 극 중 인물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물음이다. 죽음을 막기 위한 제도와 기술의 진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삶의 이유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언어는 여전히 예술의 몫이다.
<메리골드>는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신념, 그것은 수치나 제도만으로는 싹틀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연결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감정의 안전지대를 마련해야 한다. 예술은 그 지대를 마련하는 몽석이며, 시스템은 그것을 지탱하는 금속처럼 정교하고 단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인드 SOS는 지금 그 사이를 잇는 연결점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마음 ON STAGE 오픈마이크, 마음 캠프, SNS 챌린지, 힐링 토크 콘텐츠 <쓴생달밥>, 그리고 앞으로 도입될 AI 챗봇 기반 상담까지. 하나의 목소리가 타인과 연결되고, 그 연결이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의 생태계를 실현해가고 있다.
예술이 먼저 묻고, 시스템이 뒤따라 응답하는 사회. 그곳에서 우리는 ‘살고 싶다’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뮤지컬 <메리골드> 프로듀서
류혜원 마인드풀커넥트 대표이사, 마인드SOS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