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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탈피하고 거듭나야"…춤추는 예술가 최호종의 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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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탈피하고 거듭나야"…춤추는 예술가 최호종의 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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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오늘 옳다고 생각한 게 언젠가는 착각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탈피하고 거듭나는 게 제 예술관이에요. 단순히 몸이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저의 정신과 예술도 같이 성장하는 게 가장 거대한 목표입니다."

    '무용수들의 무용수', '무용계의 신'으로 불리는 최호종(31)은 이같이 말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 남자 무용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직장인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해 부수석까지 오른 최호종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의 등장만으로 출연자들은 술렁였고, '어차피 우승은 최호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미 무용계에서는 실력으로 익히 알려져 있던 그는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높아져 지난 5월 무용가 최초로 단독 공연을 개최해 '전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도 최호종은 '무용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말은 스스로 경계했다. 그는 "저라는 한 명의 개인이 큰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여한 게 있다면 한 발짝 나아간 것, '무용이 이렇게 영화 같을 수 있구나, 이런 작품도 있구나'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무용의 대중화'라는 거창한 걸 이루어냈다고 할 수는 없다. 작은 약진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이자 결단은 국립무용단 퇴단이었다. 최호종은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 전 8년간 몸담았던 국립무용단을 박차고 나왔다. 무려 4년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입단을 목표로 달려왔지만, "늘 다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찰하는 예술관에 있어서는 국립무용단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호종은 "국립무용단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발전한 만큼 또 다른 방향성을 계속 찾고 있었다.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직장이기도 하고, 무용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갖춰진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가진 방향성이나 예술관이 조금 더 확고했다. 욕심이 막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지금 나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갈망해온 자신의 길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한국무용을 넘어 컨템포러리로 영역을 확장한 최호종은 "다양한 장르를 겸하고, 그 안에서의 표현력을 습득하면서 '무용이 이런 언어로도 제시될 수 있다'고 알리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 춤적으로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몸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의 스케줄이었다"는 국립무용단을 떠나면 여유가 생길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현재는 더 바빠졌다고 한다. 단독 공연을 준비해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물론이고, 부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SAL(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무용단을 통해 예술적인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최호종은 "디렉터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아지다 보니까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신경 써야 할 영역이 바뀌었다"면서 "여유로워지고 싶어도 바쁘게 사는 게 내 삶"이라며 웃었다.

    최호종은 오는 7월 10, 11일 열리는 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감마(GAMMA)'에서 안무작을 선보인다. 그는 "고통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고통에 대한 사유, 권력과 고통의 관계를 무대에서 풀어내려고 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변명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위들로 인해 점유된 권력에서 파생된 고통이 나의 관심사였다"고 귀띔했다.


    대중성을 얻었음에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최호종은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스스로 '무용 대중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용 대중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대중예술화를 위해서 움직여야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말장난 같지만, 이 한끗 차이로 임하는 태도가 확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 무용 대중화는 무용을 통해 대중들의 니즈를 맞춰가는 느낌이라면, 대중예술화는 나의 예술성을 대중분들에게 조금 더 설득하는 느낌이다. 예술성을 가미하는 데 있어서 과감해지고, 정체성을 어떻게 더 드러내고 어필할 수 있는지를 신경 쓰게 되어서 대중예술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소신과 신념은 단독 공연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한 줌 흙으로'부터 '인어', '쏘 뷰티풀' 등 삶과 죽음, 호기심과 두려움 같은 보편적인 주제들을 감각적으로 구현해냈다.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를 재해석한 무대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호종은 "무용계의 전례 없는 형식의 콘서트고, 다양한 작품을 혼자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 걸 염려했다. 작품 하나하나 나의 정체성과 색깔을 온전히 담을 수 있게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용을 전공하는 모든 예술인이 봐도 무방할 정도의 퀄리티를 내려는 욕심도 있었다"면서 "결국에는 나답게 했다"고 털어놨다.


    무용의 신·무용 천재 등 최호종을 수식하는 화려한 단어들이 많지만, 사실 그에게는 '계단식 성장'이라는 서사가 가장 잘 맞는다. 당초 연극배우를 희망해 고교 시절 극단에 속해 있었던 그는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재능을 발견해 무용을 시작했다. 그런 탓에 거대한 열등감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제4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 은상, 그다음 해 금상까지 수상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툴툴 털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계단식 성장의 표본'이다. 최호종은 "그 이전에는 꿈이 없었고, 학원만 열심히 다녔다. 춤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내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대에 서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직업 만족도가 높다"고 말하는 그였다. 분명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최호종이었다.

    "나중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출지, 어떠한 작품을 만들고, 어떤 움직임을 선보일지, 내 마지막 무대는 언제고, 또 전성기는 언제일지 상상하면서 알 수 없는 미지로 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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