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로 꼽히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 <너무 늦은 시간>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책은 남녀 관계의 뒤틀림, 폭력을 다룬 단편 소설 3편을 수록했다.표제작이자 맨 먼저 등장하는 <너무 늦은 시간>은 키건의 2023년 발표작이다. 결혼을 앞둔 연인의 갈등을 통해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가 섬세히 묘사돼 있다. 작품은 주인공 카헐이 여성에 대한 욕설을 내뱉으며 끝난다. 독자는 이를 통해 여성 혐오가 얼마나 일상적이며 뿌리깊은지 알 수 있다. 2007년 발표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여성 작가와 난데없이 찾아온 한 남성의 일화를 그렸다. 독문학과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그녀에게 대접받은 케이크를 먹어 치운 뒤 “작가라더니 이곳에서 케이크나 만드냐”며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린다. 여성 작가는 자신의 습작 소설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둔 주인공으로 그 남자를 채택하며, 소소한 복수를 단행한다. 1999년 발표작이자 이 책의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된 <남극>은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갔다가 술집에서 만난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뤘다.
책은 짧은 분량임에도 장편소설 못지않은 여운을 준다. 다만 국내에 출간된 키건의 전작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그려낸 인간에 대한 연민, 따뜻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는 오로지 차가운 시선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구조를 신랄하게 파고든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