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롬 두유’, 연세대 품으로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학교법인 연세대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이롬의 식음료 사업 부문을 350억원에 인수한다. 이롬은 면역 치료 전문의인 황성주 박사가 1997년 창업한 회사로 국산 약콩을 원료로 한 두유 제품과 생식, 숙취해소제 등을 제조한다. 이번 거래에서 이롬 측은 두유 사업 관련 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연세대 측에 매각하고 건기식 부문은 남기기로 했다. 두유 제조 기술 등 핵심 자산이 거래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측은 연세유업과의 시너지 차원에서 이번 거래를 단행했다. 연세유업은 2023년 ‘크림이 가득 찬 빵’이라는 콘셉트로 출시한 생크림빵이 편의점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유가공업계 히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SNS와 편의점 채널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확산하며 화제가 됐고 지난해부터는 가공유, 크림빵 등 유제품 수출에 속도를 내며 ‘K유제품’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연세유업 매출은 345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M&A업계에선 대학이 주도한 이종산업 M&A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세대는 2021년 사모펀드(PEF) 운용사 레버런트파트너스와 손잡고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네추럴웨이를 인수했다. 네추럴웨이는 숙취해소제 ‘상쾌환’과 간 기능 음료 ‘쿠퍼스’ 등을 생산한다. 연세대가 인수한 뒤 실적이 급격히 개선됐다. 지난해 네추럴웨이 매출은 1150억원, 영업이익은 10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5%, 71% 늘었다. 2026년께 기업공개(IPO)도 추진할 계획이다.
◇연세대가 M&A 우등생 된 까닭
대부분 대학은 기술지주회사, 산학협력단을 통해 투자한다. 대학 내에서 연구한 기술을 외부 기업과 연계해 상용화하거나 창업·산학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의 실질적 활용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다. 교육·연구의 연장선에서 재정적 보완을 추구하는 구조다.연세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학교법인이 인수 주체가 돼 기업을 직접 ‘품는’ 방식으로 수익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교육기관이 사업 시너지를 고려해 외부 기업을 통째로 인수한 사례는 국내 대학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연세대는 장례·예식·유가공 등 기존 수익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수백억원 규모 M&A를 꾸준히 검토 중”이라고 했다.
연세대가 M&A에 적극 나선 데는 법인 지배구조와 정부의 긍정적 기류가 뒷받침됐다. 많은 사학법인이 오너 구조인 데 비해 특정 오너가 없는 연세대는 이사회 중심 체계를 갖추고 수익사업 의사결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해 M&A 진행이 원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인 내 기획팀이 마치 대기업 M&A 조직처럼 인수 대상을 발굴하고, 이사회의 투자 심의를 거쳐 M&A를 단행하고 있다. 연세대 수익사업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기준 5315억원에 달한다.
◇교육부도 긍정적 기류
현행법상 대학이 M&A에 참여하기 위해선 교육부와의 밀접한 소통이 필요하다. 인수자금 투입, 대출 등 의무 부담(재산에 부담을 지우는 법적 행위)이 수반되면 교육부의 허가가 필수적이어서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학교법인의 M&A는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묶인다. 학교법인은 수익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의 80%가량을 학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수익이 많이 날수록 각종 학교 서비스와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이런 이유에서 교육부의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학교법인의 수익 활동 자체에 보수적이었지만 이제는 ‘잘하면 장려할 만한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교육업계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정체로 위축된 대학 재정에 전략적 M&A가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교육계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 업무에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인력이 뭉칫돈을 운영하는 만큼 투자 과정에서 부작용이 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려대는 수년 전 동문인 한 PEF 운영사 대표의 제안으로 PEF 출자와 채권 투자 등 적극적인 자본시장 참여를 검토했지만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당시 신생 PEF였던 운용사와의 이해관계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다은/차준호 기자 max@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