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내 남장한 얼굴에 반했나? 우야노 우야노…!”양반댁 자제 오사룡의 심부름으로 서린 아씨를 만난 사룡의 하인 만득이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만득의 임무는 서린 아씨에게 사룡의 마음을 전하는 것. 하지만 서린 아씨는 곱상한 얼굴에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만득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만득이가 원래 여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서울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십이야’는 만득이로 변장한 신애와 그의 쌍둥이 오빠 미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되 조선시대 농머리(현재 인천 중구 삼목선착장 일대)로 배경을 옮겼다. 세바스찬, 바이올라 등 원작의 배역 이름도 모두 한국식으로 바꿨다. 셰익스피어표 언어유희는 연극에서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로 치환되며 관객들에게 친근한 웃음을 선사한다.
작품의 얼개는 간단하다. 난파된 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쌍둥이 여동생 신애는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득이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양반가 자제 오사룡의 시종으로 들어간다. 만득은 자신이 모시는 오사룡을 흠모하지만 정작 그는 같은 마을의 양반집 아씨 서린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설상가상 서린은 만득을 마음에 품는다. 그러던 중 죽은 줄로만 알았던 쌍둥이 오빠 미언이 등장하며 네 남녀의 애정 관계는 얽히고설키게 된다.
네 남녀가 주요 등장인물이지만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서린 아씨네 집안을 관리하는 마름이 연기할 땐 비명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마름은 서린 아씨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인물로, 임도완 연출 특유의 과장되고 코믹한 몸짓을 구현하며 신분 상승의 욕망을 희화화한다. 무대 한쪽에서 북, 건반 등을 실시간 연주하며 배우들과 호흡하는 연주자도 극의 감칠맛을 더한다.
십이야는 공연 중 관객들이 자유롭게 극장을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객석’으로 전 회차를 진행한다. 객석 조명도 어둡지 않게 유지한다. 깊은 울림보다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연극이다. 공연은 오는 6일까지.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