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 공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미국보다 두 배가량 큰데, 강력한 친환경 정책에 힘입은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장 속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라서다. 올해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가 파산하면서 이렇다 할 현지 배터리 업체가 없다는 점도 한국과 중국이 눈독을 들이는 배경 중 하나다.
30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자료를 토대로 지난 1분기 글로벌 권역별 배터리 시장 규모를 집계한 결과 유럽의 점유율은 22%로, 중국(55%)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미국은 13%, 중동·동남아시아·한국·일본 등 기타 지역이 10%로 뒤를 이었다. 중국의 빠른 성장에도 유럽의 시장 점유율은 수년 전과 비슷하다. 중국과 맞먹는 속도로 시장이 커졌다는 의미다.
유럽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주요 시장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정면 승부를 벌이는 유일한 곳이라는 데 있다. 중국은 CATL과 BYD 등 자국 기업의 기세에 밀려 다른 나라 배터리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반대로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 때문에 한국이 메인 플레이어가 됐다.
이런 유럽 시장의 주인공은 2년 전만 해도 한국이었다. 2023년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합산 점유율은 60.4%로, CATL(30.0%)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지 난 1분기 한국 점유율은 37.3%로 쪼그라든 반면 CATL은 43.0%로 뛰어올랐다. EVE에너지의 헝가리 공장이 양산에 들어가는 내년에는 중국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유럽은 놓쳐선 안 되는 시장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 유럽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4%로 미국(11%)을 압도했다. 인구 약 7억 명으로 잠재 소비력도 높다. 유럽연합(EU)의 강력한 친환경 정책에 힘입어 유럽 배터리 시장 규모가 지난해 37조원에서 2035년 259조원으로 일곱 배 커질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망했다.
승부를 가르는 포인트는 현지화다. EU는 배터리에 별도의 관세를 물리지 않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유럽에 공장을 둔 배터리 업체로부터 납품받도록 자동차 메이커들에 요구하고 있다. BMW 등 완성차 회사도 리드타임(제품 인도 기간) 단축과 물류비 등 절감을 이유로 현지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를 찾는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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