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공급망의 시작점인 핵연료와 마지막 단계인 핵연료 재처리는 모두 러시아가 선두주자로 꼽힌다. 핵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소형모듈원전(SMR)이 본격 상용화하면 ‘러시아 리스크’가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MR의 연료인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이 러시아에서만 생산되는 데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도 한국·미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러시아는 이미 대형 설비를 짓고 있어서다.
신규 원전이 HALEU를 쓰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기존 가압경수로도 HALEU를 사용하면 우라늄 소요량이 40% 가까이 줄어든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앞두고 SMR의 전력 생산 효율이 낮아 이를 상쇄하기 위한 고순도 우라늄 수요가 늘고 있다.
문제는 HALEU 생산시설을 전 세계에서 러시아 테넥스(로사톰 자회사)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찬오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HALEU 제조기술은 러시아가 10세대라면 중국이 6세대, 프랑스는 그보다 한두 단계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현재 수준의 5%까지 줄이는 ‘원전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도 러시아가 앞서가고 있다. 우라늄 산화물을 2~3년 쓰고 나면 93%의 우라늄과 1.5%의 플루토늄 등 초우라늄 물질이 나온다. 나머지 5%가량은 세슘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남는다. 93%의 우라늄과 1.5%의 초우라늄 물질을 회수해 소듐냉각고속로(SFR)나 용융염원자로(MSR)에서 재활용하고 현재의 5% 수준으로 폐기물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공동 연구를 마치고 나면 국내 대형 실증시설에서 검증을 거쳐야 상용화할 수 있다. 한국은 원전 파이로 프로세싱 기대를 키우고 있지만 상용화할 땐 미국 동의가 필요하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핵 비확산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