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수익스와프(PRS·Price Return Swap)은 대기업이 부채 비율을 높이지 않고 급전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돼왔다. 중복 상장 논란으로 자회사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자회사 지분을 활용한 자금 조달 방법으로 각광받아왔다.

PRS는 일종의 사모대출이다. 증권사와 사모펀드(PEF)가 경쟁적으로 자금을 공급해왔다. 그룹 지주사의 보증을 받거나 그룹의 핵심 부동산, 특허 등 자산을 담보로 잡아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차단하면서도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계약 상대방인 증권사의 PRS 자금 공급을 회계상 대출로 인식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PRS 자금 조달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자금 조달 피난처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롯데케미칼, 이마트,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들이 PRS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드러난 것만 해도 5조8000억원에 이른다. 시장에선 이 기간 PRS 전체 자금 조달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올해만 해도 효성화학이 지난달 베트남 자회사인 효성비나 지분을 담보로 4000억원 규모 PRS 계약을 맺었고, 롯데지주는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을 활용해 1300억원을 조달했다. 한화솔루션도 5000억원 규모 PRS 계약을 체결했다.
PRS는 계약 만기 시 주가가 기준가보다 낮거나 높으면 서로 차익을 물어주는 파생상품이다. 기준가보다 주가가 오르면 매수자(금융사)가 매도자(기업)에게 상승분을 준다. 반대로 기준가 대비 주가가 내려가면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손실 금액을 보전해야 한다. 총수익스와프(TRS)에서 진화한 방식이다.
기업들은 PRS 계약을 맺으면서 주로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암묵적으로 다시 사들이기로 약속하고 있다. 증권사 등은 매각 대금 명목으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회사채 금리보다 1~2%포인트 높은 이자를 받는다. 실질적으로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 자금을 빌리는 구조지만 기업은 재무제표에 부채로 잡지 않아도 된다. 명목상 주식을 증권사에서 처분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계약 상대방인 증권사 입장에서도 PRS를 대출이 아니라 파생상품 지분 투자로 간주할 수 있어 건전성 규제를 비켜갈 수 있었다.
◇PRS 조달 갑자기 막히나
하지만 회계기준원이 연구원 의견임을 전제로 PRS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회계법인은 ‘PRS를 통해 자회사 주식의 의결권과 배당권은 금융사로 이전되지만, 주식 가치 변동에 따른 위험과 보상은 A사가 여전히 보유할 경우 금융사는 그 주식을 어떻게 회계처리해야 하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회계기준원은 ‘금융자산 양도가 제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금융사는 해당 주식을 재무제표에 인식해서는 안 되고, PRS로 지급한 금액을 채권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답했다.형식적으로는 주식을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완전히 소유권을 증권사에 이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회계법인이 A증권을 비롯한 감사 대상 금융사에 ‘PRS를 파생상품 투자가 아니라 대출로 회계상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해석이 나오자 A증권의 리스크 관리 부서가 PRS 취급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은 PRS 자금 공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PRS 계약을 대출로 인식하면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RWA 증가는 은행 지주 계열 증권사의 자본건전성을 확 떨어뜨려 전반적인 자금 운용에 악영향을 준다.
PRS 계약을 증권사가 ‘대출’로 인식하게 되면 기업 측도 해당 거래를 ‘차입금’으로 인식해야 논리적으로 맞다. 회계상으로는 거래 당사자 간에 서로 대칭적인(미러링) 인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요 회계법인은 기업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 PRS 관련 회계 처리 방향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 회계기준원에 재차 정식 질의를 해둔 상황이다. 시장에선 금융당국과 회계기준원이 PRS 전반의 혼선을 막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정철/노경목 기자 bjc@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