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살인 혐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몰래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발각된 담당 판사가 탄핵 심판 직전에 사퇴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 산이시드로 형사법원 소속인 훌리에타 마킨타시(57) 판사는 자신에 대한 법관 탄핵소추 심판 초기 절차가 시작된 24일(현지시간) 당국에 사의를 표했다고 현지 일간 클라린과 라나시온이 보도했다. 다큐멘터리 촬영이 알려진 후 90일 휴직 명령과 함께 징계 절차에 들어간 지 한달 만이다.
마킨타시 판사는 악셀 키실로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관련 상황은) 사법부와 우리 사회에 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사임 결정 배경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라도나는 2020년 11월 뇌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회복하던 중 심부전과 급성 폐부종으로 60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르헨티나 검찰은 당시 마라도나를 집에서 치료하던 의료진들이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관련자 중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기소해 지난 3월 재판이 시작됐다.
마킨타시 판사는 이 기간 몰래 마라도나 사망 사건 재판 전반을 다룬 '신성한 정의'(Justicia divin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콘텐츠 일부를 예고편처럼 편집한 1분여 분량의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뒤늦게 확인됐다.
영상 속 마킨타시 판사는 법원 내부로 보이는 건물을 배우처럼 이동하면서 사무실 책상 너머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마치 배우처럼 그를 클로즈업하며 극적 연출을 한 장면도 있었다. 중간중간 마라도나 사망 사건과 관련한 콘텐츠도 빠르게 편집돼 지나갔다.
여기에 촬영팀은 "마킨타시 판사로부터 허락받았다"면서 검찰이나 피해자 측 동의 없이 공판 방청석에서 심리 상황을 녹음하기도 했다.
검찰과 피고인, 마라도나 유족 등은 일제히 마킨타시 판사의 품위 유지 위반과 공정성 훼손을 지적하며 강하게 성토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여론 역시 "재판을 리얼리티쇼로 전락시켰다"며 법관 탄핵을 요구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사법부 내에서도 마킨타시 판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검찰에서 별도로 형사 처벌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명문대로 꼽히고, 마킨타시 판사가 강의를 해왔던 아우스트랄대에서도 해당 강좌를 폐쇄하기로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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