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예상 못했다. 미국이 이렇게 빨리 이란을 때릴 줄은. 사실 이란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이다. 돈 쓰는 걸 진짜 아까워한다. 외국 정상과의 회담 때 “항공모함 한 척 움직이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투덜댄 적도 많았다. 집권 1기 때 김정은과 북핵 협상을 하는 대가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도 했다.
집권 2기에는 ‘남의 나라 전쟁에 왜 개입하느냐’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 강해졌다. 트럼프 지지층은 물론 미 국민 전체에서도 이란 공격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했다. 트럼프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 자유 진영을 지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조차 발을 빼고 있었다. 당연히 이란 공격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트럼프도 처음에는 이란과의 전쟁보다 협상에 무게를 뒀다. 그런데 돌변했다.
트럼프는 왜 이란을 때렸을까.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임박했다고 봤을 수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란이 핵을 가지면 이스라엘은 생존 기로에 서게 된다. 미국도 이스라엘을 잃으면 중동에서 힘이 빠진다. 미국이 세력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섰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란 핵 프로그램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라고 봤을 수도 있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친이란 무장세력은 궤멸하다시피 했고 이란은 알고 보니 ‘이빨 빠진 사자’였다. 이스라엘의 강공론에 트럼프의 귀가 얇아졌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승부가 먹힐지는 미지수다. 성공한다면 미국은 중동 질서를 단번에 재편할 수 있다. 이란이 무력화되는 걸 넘어 친미 정권으로 바뀐다면 미국엔 더할 나위 없다. 이란과 가까운 중국, 러시아에 한 방 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번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거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때처럼 미국은 또다시 중동 전쟁의 수렁에 빠진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번 이란 공격을 트럼프 일생일대의 가장 위험한 도박으로 부르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전쟁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화약고, 중동의 화약고가 터졌다. 아시아의 화약고는 안전할까. 대만해협의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핵전력에 이어 우크라이나전에서 현대전 경험까지 익혔다.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까지 넘겨받고 있다. 트럼프의 신경이 중동에 쏠린 사이 중국 견제도, 북한 억제도 소홀해질 수 있다. 미군은 이미 두 개, 세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 여기에 주한미군 감축설까지 나온다. 지금은 ‘설’이지만 미국에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일부를 한반도 밖으로 빼자는 논의가 제법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루머가 현실이 됐을 때 전개될 상황에 우리는 충분히 대비돼 있을까. 벨기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은 연초 ‘2025년 주목해야 할 10대 분쟁지역’에 한반도를 포함시켰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트럼프의 일방적 결정에 제동을 걸어줄, 집권 1기 때 같은 ‘어른들의 축’이 없다는 점도 불안을 키운다. 그동안 트럼프는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매드맨 전략’을 쓴다고 여겨졌는데 이젠 진짜 예측 불가가 돼 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건 굳건한 안보와 안보 자산이다. 자강과 함께 한·미 동맹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거론하는 성명을 냈다. 한·미 간 틈이 생긴 것 아닌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 미국과의 물밑 소통을 늘려야 한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가장 많이 통화한 외국 정상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였다. 당시 주미 일본대사 스기야마 신스케는 트럼프의 사위로 외교안보 정책에 깊이 관여한 재러드 쿠슈너와 매주 한 번 이상 만났다. 우리 외교는 어떤가.
한·미·일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때 일본과의 군사정보교류협정 중단 같은 불협화음이 되풀이되면 결국 우리 손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협력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 중 하나가 NATO 정상회의다. 한국의 불참이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도록 세심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