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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경쟁과 붕괴 사이, 동남아 LCC 생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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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경쟁과 붕괴 사이, 동남아 LCC 생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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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저비용 항공사(LCC)가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지역 중 하나다. 바다를 건너는 인적·물적 왕래가 잦고, 내륙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도 많다 보니 승객들은 버스를 타듯 비행기를 이용한다. 인도네시아처럼 동서 길이가 북미 대륙과 맞먹는 나라에선 비행기를 몇 번씩 갈아타야 전국을 이동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처럼 고속 도로가 발달하여 내륙이 하나로 연결되는 나라에서 보면 이처럼 항공기 운항이 촘촘히 이어지는 구조는 경이로울 정도다.

    운임도 저렴하다. LCC를 이용하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을 왕복 10~20만원 선에서 오갈 수 있다. 출장이나 여행을 넘어, 일상적 교통 수단처럼 자리 잡은 셈이다. 하지만 항공사를 바꿔 타보면 같은 가격이라도 서비스 품질과 정책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기내식을 기본 제공하고, 어떤 곳은 생략한다. 정시 출발률, 수하물 규정, 고객 응대 품질도 제각각이다.


    많은 노선이 운항하다 보니 사고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동남아 LCC에서 발생한 대형 항공 사고만 8건에 달하며, 이 중 5건은 전원 사망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에어아시아 8501편(2014년), 라이언에어 610편(2018년), 스리위자야 항공 182편(2021년) 등이 바다로 추락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는 기체 결함, 조종사 실수, 정비 불량, 악천후 대비 미흡 등 복합적인 문제가 지목되고 있다. LCC가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안전 관리 체계가 뒤따르지 못한 결과다.

    이런 동남아 저비용 항공 시장에 최근 상징적인 사건 하나가 있었다. 호주 국적 항공사 콴타스(Qantas)는 1920년 창립된 세계 3대 장수 항공사 중 하나다. 2004년 저비용 항공 브랜드 ‘제트스타(Jetstar)’를 출범 시켰고, 이듬해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한 자회사 ‘제트스타 아시아(Jetstar Asia)’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6월 11일, 콴타스는 오는 7월 말 제트스타 아시아의 모든 운항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500여 명의 직원은 일자리를 잃고, 16개 노선이 폐쇄된다. 콴타스는 운영 종료 배경으로 수익성 악화, 치열한 시장 경쟁, 싱가포르 공항 기반의 고비용 구조를 지목했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동남아 LCC 산업 전반이 마주한 구조적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실제로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LCC 격전지다. 2024년 기준 이 지역 국제선 좌석의 66% 이상이 LCC에 의해 공급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 평균(33%)의 두 배 수준이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AirAsia), 베트남의 비엣젯(Vietjet), 인도네시아의 라이언에어(Lion Air) 등 상위 3개 사가 전체 공급 좌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항공사는 최근 수백 대 규모의 항공기를 발주하며 공격적 확장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보유 항공기 200여 대에 더해 170대 이상을 추가 주문했고, 비엣젯도 에어버스와 보잉에 총 300대 이상을 발주했다. 하지만 이런 확장은 공급 과잉을 야기했고, 과당 경쟁은 항공권 단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에어아시아는 올해 1분기 평균 항공권 가격을 전년 대비 9% 낮췄으며, 일부 항공사는 편도 10달러 이하 초저가 운임도 내놓았다.




    반면 유류비, 공항 사용료, 보안세, 인건비는 꾸준히 상승 중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공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9%에 불과하다. 이는 전 세계 평균(3.7%)의 절반 수준이다. 제트스타 아시아가 철수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높은 운영비 부담이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동남아 항공 시장의 또 다른 한계는 항공 자유화가 아직 미비하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단일 항공시장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ASEAN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규제 일원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항공사들은 노선을 추가하거나 확장할 때 양국의 이중 허가, 슬롯 배정, 운임 규제 등 다양한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 한국 LCC들 역시 동남아에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은 팬데믹 이후 동남아 노선을 재정비하고 운항을 확대하고 있다. 인천, 부산, 대구, 청주 등 주요 공항에서 베트남(다낭, 하노이, 호치민), 태국(방콕, 치앙마이), 말레이시아(코타키나발루), 필리핀(세부, 마닐라) 등지로 운항을 재개하며 팬데믹 이전의 85~90%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시장 진입이 늘어난 만큼 경쟁도 격화됐다. 일부 항공사는 10만 원 이하의 덤핑 운임을 제공하며 좌석을 채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익성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한국 LCC의 동남아 노선 평균 수익률은 3% 미만이며, 일부 노선은 적자 운항 중이라고 한다. 정비 인프라, 현지 대응조직, 슬롯 우선권 등에서도 현지 LCC에 비해 불리한 입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LCC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강점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안전 기준, 항공 정비 품질, 고객 응대 시스템의 안정성 등이 꼽힌다. 또 K-콘텐츠와 연계된 관광 수요, 한류의 영향력은 한국 저비용 항공사의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반면 항공기 규모나 노선 다양성에서는 동남아 현지 LCC에 밀리는 약점이 있으며, 잦은 유가 변동성과 고정비 부담은 위협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회로는 팬데믹 이후 재구성되는 항공 네트워크와 프리미엄 LCC에 대한 수요 증대를 들 수 있다. 결국, 강점을 살리고 위협을 관리하면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기 수요 회복에만 의존한 무분별한 노선 확장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익성 악화와 재무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LCC 업계는 이제 공급 조절, 노선 전략 재편, 비용 구조의 체계적 최적화가 절실한 시점에 있다. 또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동남아 국가들과의 항공 협정 확대, 슬롯 확보 외교, 정비 인프라 구축, 공항 요금 완화 등의 정책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항공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인식하고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노력도 필요하다.

    제트스타 아시아의 퇴장은 단순한 일개 저비용 항공사의 이탈이 아니다. 콴타스라는 전통 깊은 모회사와 동남아 대표 허브인 싱가포르라는 최적의 조건에서도 수익 기반이 무너지면 LCC는 생존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동남아 노선을 운영 중이거나 확장하고자 하는 한국 LCC들은 제트스타 아시아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려는 승객에만 초점을 맞춘 외형 확장에 앞서, 동남아 현지 고객들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내부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 안전 운영 체계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남아에서도 '많이 태우고 싸게 판다'는 고전적인 저비용 항공사의 수익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시장 점유율 확보만을 목표로 한 무리한 확장은 자칫 회복 불가능한 적자를 불러올 수 있다. 그만큼 동남아 하늘길의 생존 경쟁은 치열하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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