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귀가 얼얼한 정도로 우렁찬 함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의 솔로 월드투어 '홉 온 더 스테이지(HOPE ON THE STAGE)' 피날레 무대를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이었다.
전 세계 16개 도시에서 진행된 이번 투어의 총 관객 수는 무려 52만4000명. 한국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가 공존하는 콘서트 현장은 제이홉이 방탄소년단을 넘어 솔로로도 상상 이상의 가능성과 실력을 입증했음을 보여줬다.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하기 전 스트리트 댄서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제이홉의 정체성과 강점은 무대 위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날렵하고 가벼운 몸짓으로 다채로운 춤의 매력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분위기를 단숨에 압도하는 강렬한 무드의 안무부터 특유의 그루브를 살린 힙합 바이브, 펑키함과 여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무브먼트까지 제이홉은 놀라울 정도로 촘촘하게 퍼포먼스 기량을 펼쳐 보였다.
매 무대 곡의 흐름과 혼연일체가 되어 물 흐르듯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제이홉의 모습에서 공연명 '홉 온 더 스테이지'가 바로 떠올랐다.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역대급 퍼포먼스다", "역시 제이홉", "이런 게 글로벌 클래스" 등 랩은 물론 춤 실력으로도 정평이 난 그를 향한 호평이 쏟아졌다.
최고의 무대가 나오기까지 퍼포먼스 준비에는 무려 7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제이홉의 열정, 그리고 아티스트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내려는 퍼포먼스 디렉터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빅히트뮤직에서 방탄소년단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성 퍼포먼스 디렉터는 한경닷컴에 "제이홉이 전역하자마자 쉬지 않고 안무와 퍼포먼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쏟아냈다. 무대에서 함께할 댄서들도 직접 한 명씩 보고 선정했다. 그렇게 구상한 공연의 방향성과 아이디어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세트리스트마다 안무를 새롭게 구성하고 기존 퍼포먼스들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곡마다 마치 하나의 미션을 해결하듯 작업하고, 완성된 안무를 같이 검토하면서 제이홉과 소통을 이어 나갔던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제이홉의 뿌리인 스트리트 댄스 장르를 콘서트에서 자연스럽고 인상 깊게 풀어내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고 부연했다.
공연은 제이홉이 걸어온 여정을 '야망(Ambition)', '꿈(Dream)', '기대(Expectation)', '상상(Fantasy)', '소원(Wish)' 다섯 개의 테마로 풀어냈는데, 가장 눈길을 끈 섹션은 '꿈'이었다. 과거 스트리트 댄서로 활동해 현재는 방탄소년단의 메인 댄서가 된 제이홉의 정체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한 파트다. 힙합, 락킹, 하우스, 팝핑 등 각 장르의 전문 스트리트 댄서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각 잡힌 제이홉'이 아닌 '즐기는 제이홉'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디렉터는 "이번 투어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섹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호석(제이홉 본명)이라는 사람과 제이홉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파트였다. 실제로 제이홉이 안무와 퍼포먼스에 워낙 디테일하게 의견을 줘서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그는 "제이홉 무대에서 퍼포먼스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췄다는 저희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만큼 결과물이 정말 좋아서 서로 만족했고, 그런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힘들어도 성취감이 있었다"면서 "무대 위에서 결과물을 100% 이상 발휘한 제이홉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디렉터는 제이홉이 전역 후 발표한 세 장의 싱글 '스위트 드림스(Sweet Dreams)', '모나리자(MONA LISA)', '킬린 잇 걸(Killin' It Girl)'의 안무도 제작했다. 제이홉이 군 복무를 마치고 솔로로 재도약하는 데 퍼포먼스로 큰 힘을 실어준 인물이다. 투어를 시작할 때 '스위트 드림스' 무대가 맨 처음 베일을 벗었고, 이어 투어 도중 '모나리자'를, 마지막 공연에서 '킬린 잇 걸'을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김 디렉터는 "투어 준비 과정과 투어 기간 동안 세 개의 솔로 싱글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했다. 부담이 컸다. 워낙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많았다. 월드투어를 다니면서 호텔 방에서 안무를 제작하기도 했었다"고 지난 과정을 돌아봤다.
'스위트 드림스' 퍼포먼스와 관련해서는 "이지 리스닝 장르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이다. 여기에 제이홉 특유의 칠(chill)한 매력을 살려 대중들이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는 챌린지 스타일의 안무를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혔다.
'모나리자' 무대를 통해서는 "제이홉의 위트 있는 섹시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댄서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셀카를 찍는 듯한 연출로 곡명이 가진 느낌 살리고자 했다. 또 제이홉이 한 손가락으로 눈썹을 스치는 동작은 모나리자의 눈썹을 떠올리게 하고, 엔딩에서 다 같이 작가가 스케치하는 듯한 동작들도 넣어서 재미를 더했다"고 말했다.
제일 마지막에 공개된 '킬린 잇 걸'은 현장에서 열띤 호응을 얻었다. 동작 곳곳에서 제이홉의 유려한 선이 잘 드러났고, 여성 댄서와의 과감하고 섹시한 페어 안무가 신선함을 안겼다. 제이홉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감탄을 연발했었다.
김 디렉터는 "마치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으셨으면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머릿속에 어느 정도 예상하는 그림이 있었겠지만, 막상 무대를 보면 그 모든 예상이 깨지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으면 했다"면서 "현장에서 아미 분들 표정을 직접 봤는데, 다들 너무 놀라서 비명만 지르시더라. 그걸 보면서 '아, 성공했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어 "강렬하고 스케일감 있는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제이홉의 또 다른 섹시함을 담으려고 했다"며 "여성 댄서분들과의 페어 안무라든지, 새로운 춤 스타일이나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무브먼트들도 많이 시도한 무대라 저희에게도 굉장히 의미가 컸다"고 덧붙였다.
앞서 제이홉은 프랑스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의 제안을 받아 프랑스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개최된 자선행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공연의 티켓은 10분 만에 매진됐고, 외국인들이 '마이크 드롭' 무대 도중 일제히 한국어로 "미안해 엄마!"를 외치는 장관을 펼쳐내기도 했다.
당시와 관련해 김 디렉터는 "제이홉을 팝 아티스트 바이브로 풀어낸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안무 중심보다는 전체 그림과 연출의 웅장함을 강조하고자 했다. 특히 제이홉이 제안한 오케스트라 아이디어 덕분에 기존 투어 무대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안무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될까. 김 디렉터는 "음악·콘셉트·스타일링·가사·톤 앤드 매너 등 전체적인 요소를 먼저 살펴보고, 그 안에서 저만의 키워드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다가 3인칭 시점으로 바꿔본다든지, 사물을 거꾸로 보거나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해석해보려 한다"며 "팀원들과 작업할 때 각자의 생각이 충돌하고, 다시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파편들이 누구도 예상 못 했던 결과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또 방탄소년단 완전체 퍼포먼스를 제작할 때는 "7명의 팀워크와 개개인의 매력을 조화롭게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각 멤버의 개성과 캐릭터가 무대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퍼포먼스적으로 합을 맞추는 부분과 각자가 돋보이는 순간을 균형 및 조화 있게 맞춘다"고 했다.
제이홉의 솔로 퍼포먼스의 경우, "정호석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본인만의 스토리에 기반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 개인의 색깔과 디테일한 무대 연출을 더 깊게 담는다는 차이가 있다. 솔로곡은 본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와 퍼포먼스를 제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전했다.
김 디렉터는 제이홉을 "정말 섬세하고 완벽에 가까운 성향"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함께 작업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과정과 결과의 윤택함은 올라간다고 했다. 진정성과 퀄리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춤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이 워낙 풍부해서 잘 통하는 부분이 많다. 또 아미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서 옆에 같이 있으면 그 진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같이 고생하는 스태프들도 늘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들을 보면, 저희도 자연스럽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친구를 따라 시작한 브레이크댄스로 춤과의 인연을 맺고, 안무가로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은 김 디렉터는 2022년 빅히트뮤직에 합류했다. 제이홉 솔로 외에도 '달려라 방탄', 슈가 '해금', 지민 '스메랄도 가든 마칭 밴드(Smeraldo Garden Marching Band)', '후(WHO),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 '셋 미 프리 파트2(Set Me Free Pt.2), 정국 '3D', '스탠딩 넥스트 투 유(Standing Next to You)' 등 다수의 퍼포먼스를 제작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K팝 그룹인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은 그에게도 큰 활력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최상의 시너지를 기대케 했다.
김 디렉터는 "방탄소년단이 쌓아온 수많은 업적과 매번 새롭고 신선한 무대들이 모두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듯이, 저 역시 우리 멤버들이 남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고 제작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걸어갈 새로운 길에 제가 가장 잘하는 분야로,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서로를 지켜보며, 또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만들어가며 끝까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