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04일 15:2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의 행동 반경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명문화’를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대기업이 자회사를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등이 당분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과 지주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지주회사인 한화의 주가는 한 달 사이에 4만원대에서 9만1100원으로 두배 이상 올랐다. 저 PBR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조산업의 주가는 이날 4만9650원에서 5750원(12%) 오른 5만54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공약은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것이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이같은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2~3주 내에 통과시킬 예정이다.
저 PBR 기업에 대해 페널티를 주는 이재명 정부의 ‘밸류업’ 압박도 거세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주식의 PBR이 0.8 미만인 경우, 비상장주식과 동일하게 자산·수익 등을 반영한 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일부 기업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조산업은 골프장 등 보유 자산이 조단위를 넘어서지만, 시가총액은 2700억원대에 불과하다. 안정환 인터레이스자산운용 대표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추려는 유인이 크다”며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들은 이런 정책 변화를 반기고 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의 이상목 대표는 “자회사 중복상장이 중단되면서 저평가된 지주사들이 재평가될 것”이라며 “자산을 많이 보유한 유통·부동산 기업들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기업과 증권업계에서는 이런 정책 변화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자회사의 중복상장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상증자 시장 역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주주 정책의 기조가 강화되면 만큼 유상증자를 추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을 예상한 기업들이 대선 전에 유상증자를 실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2차전지 기업인 삼성 SDI와 포스코퓨처엠은 이미 자금 조달에 나섰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를 통해 2조3000억원의 자금조달을 앞두고 있다.
다만 이런 상법개정안이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내·사외이사에게 모두 법적 책임이 강화되면 경영 판단과 의사결정이 미뤄지거나, 단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