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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낮, 묘지의 밤…파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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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낮, 묘지의 밤…파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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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어느 오후, 산뜻한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프랑스 파리 6구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생제르맹 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은 그는 직원에게 눈인사를 건넨 뒤 익숙한 듯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꺼내 고요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문장을 음미하는 그의 모습은 이 도시에서 오랜 시간 반복돼온 낯익은 장면이다.

    노신사의 배경은 ‘문학 카페’로 불리는 ‘레 뒤 마고’. 테이블마다 ‘단어들이 음미되는 곳’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카페를 넘어 문학, 철학 등 지성이 피어난 터전임을 상징한다.


    카페는 프랑스인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든 공간이다. 그들은 카페에서 문학과 철학을 꽃피웠고, 세상을 바꾸는 사상을 논했다. 파리의 카페는 작지만 가장 자유로운 도서관이자 강의실이었다. 한 잔의 커피는 시대를 움직이는 연료였다.


    찬란했던 벨 에포크 시대 파리를 사랑했던 이들은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고요한 기념비로서다. 파리의 묘지는 단순히 죽음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니다. 프로코프에서 촉발된 계몽주의, 레 뒤 마고의 창가에서 자란 실존주의, 플로르의 테이블에 쌓인 문장들은 시간의 무게를 안고 묘지의 돌 위에 새겨졌다. 레 뒤 마고와 플로르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이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함께 잠들어 있다. 페르라셰즈 묘지에는 슬픔에 잠긴 여인상이 지키는 천재 음악가 쇼팽의 묘가 있다. 그의 묘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팬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수북하다.


    파리의 카페와 묘지는 어쩌면 인생의 낮과 밤을 닮았다. 사유의 시작과 끝, 그리고 기억과 추모. 도시는 공간과 시간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철학과 예술로 승화시켰다. 파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묘비 앞에 꽃을 놓는 행위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사르트르·보부아르…당대 지성인들의 영감의 원천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들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시대를 이끈 지성의 출발점이자 역사적 무대다. 철학과 혁명, 예술과 사상을 싹틔운 이곳은 도시가 품은 가장 지적인 장소다.

    파리6구에 있는 ‘카페 르 프로코프’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1686년 문을 연 이곳은 나폴레옹이 커피값을 내지 못해 모자를 맡기고 갔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지금도 카페 한쪽에 ‘나폴레옹의 모자’를 기념한 장식이 남아 있다.



    프로코프는 단지 오래된 카페가 아니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진원지이자 프랑스혁명을 이끈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가 이곳에서 토론을 벌였다. ‘계몽주의의 성경’으로 불리는 <백과전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는 자유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이들의 아지트였다. 르 프로코프는 로베스피에르, 조르주 당통, 장 마라 등 프랑스혁명의 주요 인물이 정치적 견해를 나누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프로코프는 ‘카페’라는 장소가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곳이라는 인식을 처음 제시했다.

    프로코프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의 두 카페도 프로코프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카페 드 플로르’와 ‘레 뒤 마고’다.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의 구심점인 생제르맹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 두 카페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주의 철학이 탄생했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기욤 아폴리네르,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등 수많은 철학가와 예술가가 이곳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했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카페 드 플로르의 단골이었다. 카페 드 플로르를 ‘제2의 집’으로 삼았다. “아침 9시부터 낮 12시까지 글을 쓰고,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카페 드 플로르는 집과 같은 곳이다”라고 썼다.

    레 뒤 마고는 스스로를 ‘문학 카페’로 정의한다. 1885년 생제르맹 데 프레에 문을 연 이 카페는 수백 년간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했다. 매장에는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사상가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이 카페는 현재 매년 ‘레 뒤 마고 문학상’을 수여하는 등 문학계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파리9구의 오페라광장과 카푸신대로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는 ‘카페 드 라 페’는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럽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오스만 양식에 프레스코화 등으로 장식해 파리의 낭만을 한껏 드러낸다. 카페 드 라 페는 1862년 나폴레옹 3세의 명에 따라 문을 열었고, 오페라 가르니에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건축을 맡았다.

    이 카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빅토르 위고가 자주 찾은 곳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카페 드 라 페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지성인들과 교류했다. 헤밍웨이에게 이 카페는 창작의 영감이자 토론의 장이었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인 빅토르 위고도 카페 드 라 페에서 글을 썼다.



    파리의 카페는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과 문학, 예술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코코뱅·양파수프…파리 카페에선 커피만 팔지 않죠
    꼭 먹어봐야 할 시그니처 메뉴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들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 이상이다. 이곳에선 시그니처 메뉴들과 함께 19세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카페의 역사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에 도시의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카페 프로코프’의 메뉴판을 펼치면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역사가 담긴 레시피(historical recipes)’. 1686년 문을 연 카페가 자랑하는 레시피다. 그 중 ‘코코뱅’(사진)을 선택했다. 레드 와인에 닭고기를 천천히 익혀내는 코코뱅은 수백 년간 사랑받은 시민 요리의 정수다. 와인과 허브의 풍미가 깊게 배어 부드럽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카페 프로코프에서는 이브르 드 줄리나(Ivre de Julienas)식 코코뱅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코코뱅과 달리 보졸레 지방의 와인인 줄리나 와인을 사용해 맛이 가볍고 산뜻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또 다른 요리로 어니언 수프가 있다. ‘카페 드 라 페’에서는 1862년부터 전해 내려온 레시피로 만든 어니언 수프를 낸다. 부드럽게 볶은 양파와 깊은 육수, 콩테 치즈, 크루통이 조화롭다. 전채 요리지만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겨울철 파리에서 어니언 수프는 ‘프랑스식 해장국’으로 불릴 만큼 널리 사랑받는 클래식이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파리의 시그니처 음료가 있다. 핫초콜릿이다. 카페 ‘레 뒤 마고’의 ‘올드 스타일 핫초코’엔 1884년부터 전해 내려온 비밀 레시피가 담겨 있다. 진한 초콜릿을 직접 녹여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 우유에 타서 만드는 핫초코와 달리 한 모금만 마셔도 입 안 가득 초콜릿의 깊은 풍미가 퍼진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원한다면 휘핑크림(생크림)이 올라간 비엔나식 핫초코를 주문해보자.

    세기를 이어온 맛, 파리의 카페가 내놓는 또 다른 메뉴다.
    미술관 빼닮은 파리의 묘지…죽음을 예술·철학으로 승화
    파리 3대 공동묘지
    프랑스 파리 동쪽 끝, 20구에는 축구장 62개 크기(44㏊)의 거대한 야외 미술관이 있다. 무성한 나무와 굽은 길, 고즈넉한 산책로를 갖춘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남긴 삶이 깃든 ‘페르라셰즈’ 묘지다.

    파리의 묘지는 죽음을 기리는 장소 그 이상이다. 예술과 철학의 도시 파리는 죽음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 묘지는 교외의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공원이다.


    페르라셰즈 묘지가 그 시작이었다. 1804년 나폴레옹은 “모든 시민은 평등하게 죽는다”는 선언 아래 이 묘지를 설계했다. 귀족과 민중, 예술가와 노동자가 공간의 구분 없이 한자리에 묻히게 된 배경이다. 처음 정원식으로 조성된 이 묘지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이 찾는다. 방문객들은 이 공간을 ‘야외 미술관’이라고 일컫는다. 쇼팽과 에디트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 마르셀 프루스트…. 묘지 곳곳에 예술가들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초록초록한 숲길을 걷다 보면 쇼팽의 묘지가 나온다. 무덤 위에는 슬픔에 잠긴 여인상이 있다. 부서진 현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은 음악의 뮤즈를 상징한다. 천재 음악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예술의 여신을 형상화했다. 방문객들은 무덤 앞에 꽃을 놓고 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파리 남쪽 14구의 ‘몽파르나스’ 묘지는 보다 사유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철학자들의 마지막 주소다. 1824년 조성된 몽파르나스 묘지의 규모도 19㏊에 이른다. 3만5000여 개의 무덤이 있다.

    이곳에는 실존주의 철학의 아이콘인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두 사람은 대학교에서 처음 만나 지적 경쟁자이자 연인, 동지로 평생을 함께했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를 탄생시켰다. 보부아르는 현대 여성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자녀도 두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 죽은 뒤 몽파르나스 묘지에 나란히 안장됐다. 함께 묻힌 것은 이들의 관계가 결혼의 형식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의 본질적 결합이었음을 뜻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평생을 함께하며 지성·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몽파르나스는 그들의 활동 무대이자 삶의 중심지였다.


    파리 북쪽 18구 ‘몽마르트르’ 묘지는 가장 낭만적인 장소로 꼽힌다. 언덕 위 고요한 숲속엔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던 이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이 ‘낭만과 예술의 묘지’로 불리는 이유다.

    몽마르트르 묘지는 파리 예술계의 중심지인 몽마르트르 언덕 바로 아래에 있다. 화가 에드가 드가와 밀레, 작곡가 베를리오즈, 소설가 에밀 졸라 등이 잠들어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값싼 물가와 자유로운 분위기는 무명 시절의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의 창작과 혁신의 무대였고, 그 정신은 묘지에 잠든 이들의 삶과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파리의 묘지를 산책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무덤은 삶의 깊이를 되새길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곳임을. 파리의 묘지는 추모와 슬픔의 장소가 아니라 영감이 살아 있는 예술의 심장이다.
    묘지를 도심으로 끌어들인 파리…
    죽은자를 위한 공간이 산자들의 산책로로…프랑스의 묘지 문화

    프랑스 파리는 묘지를 도시에서 추방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심으로 들여와 정원으로 가꿨다. 예술적인 추모의 공간으로 설계했다. 공동묘지를 혐오시설이 아니라 문화시설로 승화시켰다.

    파리의 3대 공동묘지는 사실 대대적인 위생 개혁의 결과다. 중세까지만 해도 귀족은 성당 지하에, 시민은 뜰에 묻혔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하면서 묘지로 인한 위생 문제와 공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프랑스 혁명 이후 묘지 개혁이 단행됐다. 1804년 지어진 세계 첫 정원형 공동묘지인 ‘페르라셰즈’가 그 산물이다.

    이후 몽파르나스, 몽마르트르로 이어지는 파리의 대표적 묘지는 모두 정원처럼 지었다.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은 산 자의 산책로가, 묘지는 도시의 공원이 됐다. 조각상과 예술적 묘비가 어우러진 묘역은 하나의 박물관이자 기억의 장소다. 조문객은 묘지를 거닐며 삶과 죽음을 사유한다.

    프랑스 묘지 문화는 시한부 제도가 특징이다. 대부분의 묘지는 10년 또는 20년 단위로 계약한다. 기한이 지나면 유골은 납골당 또는 공동 유골장으로 이장한다. 작은 면적의 묘를 순환시켜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묘지도 도시 계획의 일부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

    묘비명엔 ‘famille(가족)’가 자주 등장한다. 프랑스식 장례의 주체는 가족이다. 프랑스는 가족을 사회의 중심으로 여기는 문화가 강하고, 가족 간 유대와 정서적 지지가 깊다.

    프랑스는 화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화장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페르라셰즈 등 주요 묘지에 현대식 화장장이 마련됐다. 화장된 유골은 벽면에 벌집 모양으로 만든 ‘콜룸바리움’(납골당)에 안치된다.

    프랑스의 묘지 문화는 동양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묘지를 주로 외곽 산지에 조성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묘지가 도심 속 문화 공간이다. 시민들은 이 공간에서 데이트하고,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낸다. 죽은 자는 잊히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하는 존재다.

    파리의 묘지는 말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기억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라고. 그래서 이 도시는 묘지마저 낭만적이다. 파리는 생의 마지막마저 아름답게 품고 있다.

    파리=라현진 기자 raral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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