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적인 대본 없이 대략적인 구성안만을 기초로 출연자 등에 의하여 표출되는 상황을 담아 제작되는 방송프로그램이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런 방송프로그램들은 개략적인 진행방식과 규칙, 특징적인 이벤트 등만 일관되게 배치해 두고 구체적인 방송내용이나 장면들은 대부분 출연자의 즉흥적인 대사와 움직임, 상호작용 등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처럼 제작된 방송프로그램 영상의 일부나 전부를 허락 없이 복제나 전송하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대략적인 구성안’과 동일 또는 유사한 구성으로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면 이는 저작권 침해일까. 이는 ‘대략적인 구성안’(이하 포맷)이 저작권으로 보호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우선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표현’이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런데 통상 ‘포맷’은 게임의 규칙 등과 같이 아이디어에 해당한다고 보거나 아이디어와 표현의 중간 단계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렇게 보는 경우 ‘포맷’은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없거나 그 보호범위가 굉장히 축소된다.
해당 프로그램의 추상적인 구성 방식이나 진행 방식, 콘셉트나 기획안까지 저작권으로 보호하게 되면 너무 과도한 독점권이 부여돼 사실상 새로운 방송프로그램 제작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퀴즈쇼’라는 추상적인 콘셉트에 대해 저작권이 부여된다면 향후에는 누구도 허락 없이는 ‘퀴즈쇼’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게 되는데 이는 누가 보더라도 매우 부당한 결론이다.
그런데 과거 대법원은 유명 예능 방송프로그램이었던 ‘짝’과 유사한 구성안으로 제작된 영상물들이 ‘짝’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지가 쟁점이었던 사건에서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은 무대, 배경, 소품, 음악, 진행 방법, 게임 규칙 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고 이러한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날 수 있다”며 “따라서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의 창작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 각각의 창작성 외에도 이러한 개별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프로그램 자체가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정도에 이르렀는지도 고려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즉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의 다양한 요소들의 선택, 배열이 창작적 개성을 가지는 경우에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의 ‘포맷’도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위 사건의 1심과 항소심에서는 ‘짝’의 독창적인 장면이라고 주장되었던 저작물의 제목(짝)을 표현하는 방식,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방식, 출연자의 등장방식, 도시락 선택 규칙, 속마음 인터뷰, 데이트 권리 게임 등이 모두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닌 아이디어에 불과하거나 이미 다른 영상물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장면으로서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심지어 위 대법원 판결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영상물 2개 중 1개는 ‘짝’의 기본적인 모티브나 일부 구성을 차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저작권 침해를 부정하였다. 이처럼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의 ‘포맷’을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에는 스포츠 경기를 소재로 하는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이 저작권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스포츠 경기는 우연적 요소로 승패가 갈리고 기초가 되는 대본이 없어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므로 저작물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또 스포츠 경기의 녹화물, 촬영물도 저작물성이 인정되지 않는 스포츠 경기의 복제에 불과하다는 측면에서는 원칙적으로 저작물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위 사건에서는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의 ‘포맷’에 관한 이슈와 ‘스포츠 경기’에 관한 이슈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앞으로 이와 같은 쟁점들이 어떻게 평가되고 판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