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부대·교도소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자영업자를 속이는 ‘대리구매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리구매 사기란 자영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단체 예약 또는 대량 주문을 한 뒤 다른 업체의 제품까지 함께 구매해 달라고 요구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기획사, 대통령 선거 캠프 등 사칭 대상이 확대되고 있어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군부대 사칭’ 사기 조직 검거

28일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6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한 범죄단지에서 한국인 사기 조직원 15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청 인터폴공조계는 이들을 송환하기 위해 캄보디아 이민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이번에 검거된 한국인 조직원들은 지난 2~3월부터 대포폰과 컴퓨터를 갖춘 단지 내 콜센터에서 활동했다. 군부대 관계자를 사칭해 음식점, 철물점 등 다양한 가게에 마구잡이로 전화를 걸어 대리구매 사기를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예컨대 조직원 A는 철물점 주인에게 “부대 내 제설작업을 위해 각삽과 곡괭이가 필요하다”고 전화한다. 이후 물건을 받을 날짜가 다가오면 “방문일에 한꺼번에 결제할 테니 전투식량도 대신 주문해 달라”며 특정 판매업체의 명함을 건넨다.
피해자가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면 조직원 B가 전투식량 판매자 행세를 하며 전화를 받는다. B는 전투식량 대금을 보내라고 요구하고, 피해자가 돈을 송금하면 A와 B 모두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군부대 사칭 대리구매 사기 피해는 이달 기준 537건으로 지난해 12월(76건)에 비해 606% 급증했다.
◇진화하는 대리구매 사기
군부대 사칭 수법이 작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며 피해가 줄자 사기범들은 진화한 시나리오를 내놨다. 2세대 유형은 교도소 공무원을 사칭한 대리 구매 사기다. 지난 3월 경남 진주에선 교도소 관계자를 사칭한 사기범이 “산불 현장에 보낼 방화복이 필요하다”며 포클레인 대여업자에게 접근해 2억원 상당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사칭 대상이 교도소로 확대되자 법무부는 “교정기관은 어떤 명목으로도 물품 구매를 요청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최근엔 공중파 방송 제작진, 시·군·구청 공무원, 대선 후보 캠프 등 다양한 기관 및 단체가 사칭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비서를 사칭해 음식점을 예약한 뒤 “고가 와인을 대신 주문해 달라”고 요구한 피해 사례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까지 정당 관계자 등을 사칭한 대리 구매 사기 피해는 50건 접수됐다.
범죄자들은 언론 보도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수법 노출 여부를 점검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양한 기망자 역할 및 시나리오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리구매 무조건 거절해야”
경찰은 피해자들이 대리구매 사기에 당하는 것은 대량 주문을 한 손님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기범은 위조된 공문서, 명함 등을 동원해 피해자에게 신뢰를 심어준다. 경찰 관계자는 “대리 구매 사기는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하다”며 “취급하지 않는 다른 물품을 대신 구매해 달라는 요구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니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