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법원에 출석하는 범죄 혐의자 얼굴 노출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2일 살인 혐의로 구속된 차철남 씨(57)의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30일 그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경기 시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난 차씨는 21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나왔다. 그는 마스크와 모자 등을 착용해 얼굴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축구선수 손흥민(33·토트넘 홋스퍼)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 20대 여성 양모씨는 상황이 달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17일 출석한 양씨는 서류철로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으나 옆에 있던 한 경찰이 이를 빼앗았다. 그는 모자 없이 마스크만 착용한 상태였다.
그동안 경찰은 강력 범죄자의 신상을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경찰이 얼굴을 가리려는 양씨의 행위를 제지해 노출되도록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살인범 얼굴은 가려주는 마당에 협박범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동정 여론까지 일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양씨가 사전에 모자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지 않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범죄자가 요청해야 모자를 챙겨준다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까지 일관되고 공정한 원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처럼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휘말리면 일선 형사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며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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