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에서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서 가는 거죠.”(서울 A운수 버스기사 B씨)
1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출국장에는 가벼운 옷차림의 중장년 남성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여행사 직원에게서 저마다 소속·이름이 적힌 명패와 탑승권을 받아들고 출국심사대로 향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인천발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 버스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이다.
◇총파업 앞두고 ‘동남아 단체 관광’
서울버스노조가 이달 초부터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은 ‘준법투쟁’에 나선 가운데 일부 조합원은 동남아시아로 단체 외유성 연수를 떠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서울버스노조는 조합원 지위 향상에 기여한 400명의 우수 조합원을 선발해 3박5일간 태국 파타야로 해외 연수를 보낸다. 이날 1차로 100명이 현지로 출발했고 나머지 300명도 다음달 16일까지 1주일 간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연수를 떠난다.
현지 일정표를 보면 연수는 명목일 뿐 사실상 관광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연수단은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한 직후 인근 휴양도시인 파타야로 이동해 5성급 호텔인 로열클리프호텔에 묵는다. 이어 수상시장, 코끼리 트레킹, 산호섬 등 체험 활동을 즐기고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는다. 3일 차인 21일 저녁엔 파타야 3대 쇼로 꼽히는 ‘알카자 쇼’도 관람할 계획이다.
서울버스노조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사측과 협의해 조합원 해외 연수를 단체협약에 명시했다. 사측이 10억원가량의 비용을 모두 부담하지만 연수 대상자 선발권은 사실상 노조가 행사한다. 총 400명의 연수자 중 사측이 보낼 수 있는 인원은 버스회사(총 60여 곳)별로 한 명씩에 불과하다. 나머지 340여 명은 노조가 선발한다.
실제 지난해까지 해외 연수에는 노조 집행부가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항 출국장엔 박점곤 서울버스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해외로 떠나는 조합원을 배웅하기도 했다.
◇“올해 초 예약…일정 변경도 어려워”
총파업을 예고해 놓고 외유성 해외연수에 나선 노조에 대해 여론의 눈총이 따갑다. 서울 버스노조는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이 결렬된 뒤 지난 7일 준법투쟁에 들어갔다. 오는 27일까지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면 28일 첫차부터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과 함께 전국 동시 파업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외유성 연수에 들어가는 비용도 따지고 보면 상당 부분 시민이 낸 세금에서 충당될 전망이다. 버스 준공영제에 따라 서울시가 연간 5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버스 적자를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누적 부채만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버스노조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쟁의행위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이미 올해 초 예약한 일정을 갑자기 변경하기도 어려워 일단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며 “노사가 합의한 단협에 따라 시행되는 연수 프로그램으로, 회사 측도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인천=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