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이탈리아 밀라노…. K팝의 주역인 블랙핑크가 내년 1월까지 하는 월드투어 공연지다. 일본 야구 성지인 도쿄돔(5만5000석), 잉글랜드 축구 FA컵 결승전이 해마다 열리는 웸블리스타디움(9만 석),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치른 스타드 드 프랑스(8만1000석) 등 그 국가를 대표하는 장소를 무대로 골랐다. 하지만 블랙핑크가 처음 활동을 시작한 한국의 수도에선 이 공연을 못 본다. YG엔터테인먼트는 이 그룹의 공연을 오는 7월 5~6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4만여 석)에서 열기로 하고 지난 8일부터 티켓 예매를 시작했다.
K팝의 중심지인 서울이 정작 K팝을 비롯한 대형 가수에게 외면받는 도시가 되고 있다. 외국 가수의 단독 내한 공연으론 사상 처음으로 30만 관객 시대를 연 콜드플레이도 지난달 6차례 공연을 모두 고양에서 끝냈다. 내년에도 서울은 공연 수도를 주장하기 어렵다. 사업 일정이 늦어져 공사 중인 대형 공연장들을 2027년에야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그간 서울에서 대형 공연을 주로 맡아온 잠실종합운동장은 내년까지 쓸 수 없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어서다. 준공 목표는 2026년 12월 30일. 공연은 2027년 상반기는 돼야 가능하다. 개장하더라도 5년간은 반쪽짜리 공연장 신세다. 서울시가 잠실야구장을 돔 형태로 다시 짓기로 해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리모델링된 잠실종합운동장을 2031년까지 쓰기로 해서다. 야구 시즌인 4~10월엔 장기 공연 대관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서울시가 전문 공연장으로 창동에 세우고 있는 서울아레나는 2027년 3월에야 완공된다. 이 공연장 사업을 시작한 2019년엔 2020년 착공해 2023년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착공식이 지난해 7월에야 열렸다. 시공사 선정이 늦어지고 금리 인상으로 공사비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대규모 인원이 입장할 수 있는 다른 장소들은 사실상 공연이 어렵다. 서울월드컵경기장(6만6704석)은 지난해 아이유, 임영웅 등의 공연을 치렀지만 잔디 훼손 문제로 축구 팬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고척스카이돔은 프로야구팀 키움 히어로즈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을 뿐 아니라 1만6744석에 불과해 대형 공연은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1만5000명 수용이 가능한 KSPO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이 수도 서울이 내놓을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고정민 한국문화경제학회 고문은 “대형 공연은 중국 일본 등 이웃 국가에서 오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가 크다”며 “서울에 대형 공연장 부족이 계속되면 이들의 관광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