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TV시장의 최강자가 일본 소니에서 삼성전자로 바뀐 건 2006년이었다. 세련된 디자인과 압도적인 성능을 겸비한 ‘보르도 TV’가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일본보다 발 빠르게 LCD, PDP 등 ‘벽걸이 TV’ 시대를 연 삼성에 맞설 만한 적수는 없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의 기술력은 삼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글로벌 TV시장에서 ‘삼성 천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20년대 들어서면서다. 가격으로만 승부하던 TCL, 하이센스 등 중국 업체가 기술을 확보하면서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도 갉아먹기 시작한 것. 여기에 글로벌 LCD 패널 시장을 접수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자 19년째 글로벌 TV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도 코너에 몰리게 됐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가 처음으로 ‘비상경영’을 선언한 배경이다.
◇선제 대응 나선 삼성 TV
삼성전자 VD사업부가 비상경영에 들어간 건 2022년 스마트폰, 가전, TV를 아우르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이 시행한 비상경영과는 결이 다르다. 당시엔 삼성전자 DX부문의 재무파트가 중심이 돼 전반적인 비용 절감에 들어갔다면, 이번에는 VD 사업부장의 판단으로 TV 사업 전반의 경쟁력 재점검과 효율화 방안 찾기에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TV 시장의 ‘넘사벽’이던 삼성전자가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점점 거세지는 중국의 공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수년 내 글로벌 넘버원 자리를 내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삼성의 점유율은 2022년 19.6%에서 지난해 17.6%로 하락한 반면 TCL(11.7%→13.9%)과 하이센스(10.5%→12.3%)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업계에선 삼성의 하락 곡선과 TCL 및 하이센스의 상승 곡선이 만나는 시점이 이르면 향후 3~4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력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중국 TV는 더 이상 저렴한 제품이 아니라 ‘싸고 좋은 제품’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글로벌 1위 타이틀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삼성이 비상경영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패널 가격 상승도 위기 부추겨
VD사업부의 위기경영을 부른 또 다른 이유는 상승하는 LCD 패널 가격이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TV의 90%에 장착되는 LCD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패널 비용은 7조5825억원으로, 최근 3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OLED로 전환하면서 LCD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공급량 조절에 나선 탓이다. 옴디아에 따르면 수요가 많은 65형 LCD TV 패널 가격은 지난해 12월 173달러에서 이달 178달러로 상승했다.
삼성은 대대적인 비용 절감과 함께 아직 중국과 격차가 있는 프리미엄 TV 판매를 늘려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회의·행사·소모품 등 비용을 줄이고 해외 출장을 최소화 할 계획이다. 원재료와 마케팅 등 각종 비용을 줄일 계획이다. 당장 TV 사업 정체를 돌파할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만큼 불필요한 비용부터 줄이기로 한 것이다.
삼성은 아울러 LCD TV보다 단가가 높은 OLED TV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리기로 했다. 용석우 VD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에도 OLED TV를 포함한 프리미엄 TV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계속 비중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