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앙은행(ECB)이 또다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 17일(현지시간) ECB는 예금금리를 2.50%에서 연 2.25%로, 기준금리는 연 2.65%에서 2.40%로 내렸다. 한계대출금리는 2.65%로 낮췄다.이번 결정은 2023년 9월부터 이어진 6차례 연속 인하이자, 지난해 6월 이후 7번째 금리 인하이다. 10개월 전 4.00%였던 예금금리는 누적 1.75%포인트나 내려갔다. 이날 금리인하 결정에 따라 예금금리는 ECB가 추정하는 중립금리 영역 1.75∼2.25%의 상단에 도달했다. 중립금리는 경제성장을 자극하지도 둔화시키지도 않는 금리 수준을 말한다
ECB 통화정책 기준인 예금금리와 미국 중앙은행(Fed) 기준금리(4.25∼4.50%)의 격차는 2.00∼2.25%p로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는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과감히 움직였고, 연준은 여전히 신중하게 관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2.75%와는 0.50%포인트 차이가 난다.
ECB는 이번 금리 인하를 통해 관세 충격에 선제 대응한 첫 주요 중앙은행이 됐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유로존 성장률이 올해 말 사실상 멈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ECB는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문에서 긴축적 기조가 완화됐음을 시사하며, 기존에 사용하던 ‘제약적(more restrictive)’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유럽의 금리 인하를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다. ECB는 미국과의 무역 긴장 고조가 유로존의 성장 전망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경제성장에 대한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 조치가 유럽 수출을 위축시키고, 이는 투자와 소비까지 위축시키는 연쇄 반응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90일 유예해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EU산 제품에는 기본 1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으며,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는 25%의 고율 관세가 적용 중이다. EU는 보복 조치를 보류하고 미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ECB는 미-EU가 서로 25%의 관세를 주고받을 경우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이체방크는 “실제 타격은 그보다 클 수 있다”며 “관세 외에도 금융 불확실성과 소비 위축이 중첩되면 경기 둔화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선 ECB가 6월에 한 차례 더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설문에 따르면, 연말까지 예금금리가 2.00% 수준에서 머물 것으로 예상되지만, 채권 시장은 1.68%까지 인하될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금리 발표 이후 유럽 주요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독일 DAX 지수는 0.49%, 프랑스 CAC 지수는 0.6% 하락했고, 영국 FTSE 지수는 보합세를 기록했다. 다만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거래량 자체는 많지 않았다.
고송희 인턴기자 kosh1125@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