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병원비·교육비에만 지갑 열어
13일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3월 대학병원의 카드 결제 추정액은 1조4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0% 늘었다. 피부과(10.1%), 내과(9.4%) 등의 카드 결제 추정액도 많아졌다. 소아과는 48.5% 급증했다.소아과뿐만이 아니다. 자녀를 위한 돈에도 아직 지갑이 열려 있다. 유아교육 카드 결제액은 1년 전보다 8.3% 늘어난 2185억원을 기록했다. 학원비 카드 결제액이 1조39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사교육비 인상에도 학원을 계속 다니게 했다는 분석이다.
의료와 교육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은 한겨울 같은 3월을 보냈다. 일단 집 밖에 나가는 일이 줄었다. 여행 업종의 카드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8.8% 급감해 59개 주요 생활 업종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다. 하나투어(-4.5%), 모두투어(-7.5%), 노랑풍선(-19.6%), 레드캡투어(-43.4%) 등 여행사가 줄줄이 부진에 시달렸다. 항공사도 마찬가지였다. 대한항공(-9.1%), 아시아나항공(-24.8%), 진에어(-33.0%), 제주항공(-5.0%) 등이 외면받았다. 교통비 카드 결제액은 16.7% 감소한 7065억원에 그쳤다.
유흥(-6.7%), 백화점(-5.1%), 편의점(-4.1%), 마트(-4.0%), 한식(-3.9%) 등 대부분 소비 업종도 부진했다. 다만 음식료 카드 결제액은 0.28% 줄어드는 데 그쳤는데 외식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줄일 수 있는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해먹으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 영화관 결제액 35% 이상 줄어
가구와 가전제품 등도 찬바람을 맞았다. 현대리바트(-6.1%) 등을 포함한 가구 업종 카드 결제액은 전년 대비 11.3% 쪼그라들었다. 가전·전자 업종도 7.2% 감소했다. LG베스트샵과 삼성디지털프라자 가맹점의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9%, 5.8% 줄었다. 3월은 결혼과 이사, 신제품 출시 등으로 실적이 호조를 보여야 하는 시기임에도 지난해보다 부진했다.문화생활도 얼어붙었다. 스포츠·문화·레저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1조4972억원으로 전년 대비 7.8% 감소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와 메가박스 결제 추정액은 전년 대비 각각 37.1%, 35.0% 급감했다.
옷도 덜 샀다. 의복·의류 업종의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6312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줄었다. 아웃도어 강자였던 디스커버리(-15.3%)와 스포츠 의류 강자인 나이키 온라인 직영몰(-21.3%) 등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골프 브랜드인 핑 의류를 비롯해 팬텀, 파리게이츠, 마스터바니에디션 등 골프웨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리스에프앤씨의 결제액도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유통업체들은 2분기에도 불황형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1분기보다 2포인트 떨어진 75로 집계됐다. 이 지수가 100 미만이면 다음 분기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경기전망지수가 나란히 85에서 73으로 떨어져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비자가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필수 소비만 하는 전형적 경기불황형 소비”라며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