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고용에 양적·질적 악영향
8일 한은은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고용연구팀의 오삼일 팀장과 채민석 과장 등 한은 연구진이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쓴 보고서에 따르면 법정 정년을 연정한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정년 연장의 대상 연령인 만 55~59세 임금 근로자가 약 8만 명 증가하는 동안 만 23~27세 청년 근로자는 11만 명 줄었다. 고령층 근로자가 한 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최대 1.5명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이 같은 대체효과는 노동조합의 힘이 센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더욱 컸다. 흔히 양질의 일자리로 여겨지는 대기업에 청년들이 진입하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로 고령 근로자의 임금이 조정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오 팀장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시행된 정년 연장은 고령층 고용은 늘렸으나 청년층 고용에 양적·질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이는 2016년 이후 청년 취업률, 혼인율 및 출산율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日 기업 67% 퇴직 후 재고용
한은은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봤다. 일본은 1994년 60세 정년을 도입했고,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계속고용 연령을 3년마다 1세씩 높여 올해 만 65세까지 계속고용이 의무화됐다. 기업이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년 연장, 정년 폐지, 퇴직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기업의 67.4%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고용된 인력의 임금은 평균 40%가량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직무 조정이 이뤄진 사례도 많았다.대신 정부는 임금이 25% 이상 감소한 고령자의 경우 고용보험을 통해 월급의 최대 15%를 최장 5년간 지급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기업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한은은 2016년 정년 연장 효과,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 등을 종합해 “법정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냈다. 오 팀장은 “일본 방식대로 퇴직 후 재고용을 한 경우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임금 삭감률을 일괄적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즉각적인 의무화는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봤다. 오 팀장은 “임금 조정에 대한 합의 없이 퇴직 후 재고용이 의무화되면 임금체계를 조정하기 힘들 것”이라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도입한 뒤 시간을 두고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희망자 전원을 계속고용하는 기업에 한해 근로자 1인당 월 3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 연장 고수
한은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자의 고용을 늘리면 고령자 소득 보전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 입장에선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인 만 60~65세 구간의 소득 크레바스를 상당 부분 메우는 게 가능하다. 고령화 등으로 2034년 국내총생산은 2024년 대비 약 3.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은퇴 연령대 근로자 70%를 재고용할 경우 감소폭이 1.9%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분석됐다.문제는 노동계가 계속고용 방식으로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최근 법정 정년 연장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퇴직 후 재고용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정년 연장 논의를 시작했다. 하반기에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