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잔스포츠, 롱샴 등 추억 속으로 사라진 ‘미들급’(중저가) 패션 브랜드가 부활하고 있다. 20~30년 전 유행한 베스트셀러 제품을 재해석하는 ‘노스탤지어 마케팅’을 앞세워 기성세대뿐 아니라 MZ세대까지 새로운 고객층으로 사로잡았다. 불황엔 익숙하고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도 이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요인으로 꼽힌다.
◇기성세대에겐 익숙, MZ에겐 신선

21일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백화점의 코치 카드 결제액은 30억9000만원이었다. 1년 전보다 82.1% 급증했다. 2월에도 코치 결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9% 증가한 21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2~3년 전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코치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0년대 유행하던 디자인의 코치 태비백은 세계적인 레트로 열풍, 고물가 속 가성비 선호 등과 맞물려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업계에선 코치의 부활이 경기 침체와 연관이 있다고 봤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불황 때마다 익숙한 것에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져 레트로 열풍으로 이어졌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경기가 안 좋을 때 복고가 유행하는 건 학계에선 상식”이라며 “경영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올드한 이미지’ 탈피에 초점을 맞춘 코치의 마케팅 전략도 부활 배경으로 꼽힌다. 코치는 배우 엘르 패닝, 여성 래퍼 이영지 등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스타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내세웠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엄마 가방’으로 불리던 코치가 Z세대 사이에서 ‘힙한 브랜드’가 됐다”고 했다.
◇50년 전 제품도 소환
코치의 부활에 힘입어 코치, 케이트 스페이드 등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 태피스트리의 실적도 반등했다. 2025회계연도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22억달러를 기록했다.코치뿐 아니다. 잔스포츠, 롱샴, 아식스, 아디다스 등 1990년대 유행하던 브랜드도 불황을 뚫고 성장하고 있다. 30년 전 이스트팩과 함께 백팩 브랜드로 이름을 날린 잔스포츠는 지난해 매출이 60% 급증했다. 무신사트레이딩이 국내 유통을 맡은 후 ‘파인트 미니백’ 등 신제품을 내놔 인기를 끌고 있다. 잔스포츠는 지난해 스타필드 수원점·하남점에 이어 올해 잠실 롯데월드몰에도 매장을 열었다. 롱샴은 지난해 미국(27%), 유럽(33%), 한국(93%) 등 세계 각지에서 두 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식품사도 노스탤지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수십 년 전 단종한 제품을 잇달아 소환했다. 올초 농심은 1975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로 큰 인기를 끈 ‘농심라면’을 재출시했다. 농심 관계자는 “유튜브에서 농심라면 광고 조회수가 1560만 건에 달하고 출시 직후 일부 마트에서 품절 사태를 빚을 만큼 반응이 좋다”고 했다. 서울우유도 12년 전 단종한 ‘미노스 바나나우유’를 최근 다시 선보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비싸고 새로운 상품보다 가격이 낮고 익숙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져 당분간 레트로 열풍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