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배우지 않아도 웬만큼 하는 수영을 굳이 돈 들여 배워야 할까, 생각도 했지만, 배움은 언제나 겸손을 가르치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깨닫는 순간, 삶을 벅차게 만드는 데가 있다.아침 수영을 하려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잠을 떨쳐내고 일어나려는 의지.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주야장천 물속에 있었는데 또다시 물로 씻어내야 하는 번거로움. 젖은 수영복을 빨아 빨랫줄에 널며 내일의 수영을 떠올리는 삶. 어쩌면 아침 수영은 의지의 총합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내가 아침 수영을 등록했다는 건 그만큼 의지가 컸다는 뜻일 텐데…. 한 달 넘게 못 갔다. 오랜만에 수영장을 다시 찾아 열심히 팔과 다리를 휘저어 보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몸은 몸을 써야 힘을 받는데, 오래 몸을 안 썼더니 힘이 쭉쭉 빠진다.
“팔 펴! 팔 펴!”
물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팔을 한껏 펴서 돌리는데 또다시 소리친다.
“팔 펴라고!”
팔을 폈는데 자꾸 팔을 펴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를 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좀처럼 펴지지 않는 건 마음밖에 없는데…. 호흡이 가빠진다. 수영 선생님은 내 팔다리만 보고도 호흡을 읽는 것 같다. 숨은 숨길 수가 없다. 수영에서 숨은 곧 동작이니까.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제주의 풍광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광례(엄혜란 분)의 연기가 나를 홀린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생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대사는 또 어떤가. 해녀는 관을 등에 지고 바닷속으로 잠수하는데, 숨이 차면 발로 차서 관을 벗는단다. 수영에서 발차기 동작을 배우면서 한 번도 한 사람의 발끝으로 관을 떨구는 장면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쉬는 숨이 그 무거운 죽음을 떨쳐내고 쉬는 숨이라고 생각하니 한없이 귀하다.
호흡법부터 다시 익혔다. 발차기도 무한 반복. 반복이라는 말은 지루한 말이지만 몸에 리듬을 실어주는 말이다. 귀한 말이다. 반복이란 말은 지구를 돌리고 달을 돌리고 바다를 돌리고 나무를 돌리고 벌레들을 돌려 계절을 맞는다. 수영을 하면서 반복이라는 삶의 기본자세를 배운다. 나는 한 달 내내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태도를 잊고 산 것 같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어둡고 습한 곳이 없다. 궁금한 게 생기고 묻고 싶은 것이 생긴다.
평영 발차기 연습을 끝내고 팔 동작과 함께 해보는데 자꾸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발차기 타이밍을 모르겠어요. 팔 동작 하면서 발차기도 같이하나요?”
“동시에 하니까 안 되지. 팔 동작 끝나면 발차기. 이렇게.”
초급반에 가장 오래 머문 할머니가 시범까지 보이며 알려주신다. 자유형은 숨이 차다고 건너뛰고, 배영은 어지러워 패스하기 일쑤인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가 평영만큼은 언제나 1등으로 출발하는 게 신기하다. 자유형 때는 숨이 차는데 평영 때는 왜 숨이 안 차실까? 물을 힘껏 밀어내는 할머니의 발동작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정말 잘하세요. 평영의 여왕이라고 불러야겠어요.”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는 신이 나서 더 신나게 발을 굴렀다. 칭찬은 사람이든 나무든 돌이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는구나. 할머니는 숨차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려고 평영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셨다. 배움은 배움을 낳고 가르침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아는 것을 나누려는 마음이 들어 있다.
물의 페이지를 펼쳐 온몸으로 오늘 배운 것을 기록하는데 다시 선생님이 소리친다. “발끝 밖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뭐든 하고자 하는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가르침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