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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의 탈을 쓴 S급 딴따라들…현대무용 경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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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의 탈을 쓴 S급 딴따라들…현대무용 경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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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B급 정서를 보여주려면 실력은 S급이라야 한다.”

    영화판 사람들이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같은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식을 비틀고, 유쾌하면서 때론 엽기적인 ‘B급의 탈을 쓴 S급’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어서다.


    엘리트 무용수가 진지한 춤의 향연을 펼칠 것 같은 현대무용판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 수영모를 뒤집어쓰고 녹색 양말에 번쩍이는 쫄쫄이 타이츠를 입은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춤이라기보단 ‘몸짓’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빠질 때쯤 2000년대 대중가요 박지윤의 ‘바래진 기억에’가 흘러나와 관객들을 당황하게 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 ‘바디콘서트’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9일까지 12일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15주년 기념 기획공연을 펼쳤다. 1000석 극장에서 R석 표값만 10만원인 15회 장기공연이다. 가장 척박한 예술이라는 현대무용에서 보기 드문 무모한 도전. 지난 8일 공연에서 이들을 직접 만났다.
    ◇춤의 자유는 고통의 몸짓에서

    춤은 가장 자유로운 예술로 여겨진다. 미술이나 문학, 영화처럼 매개체가 필요한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오직 몸 하나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무용은 가장 엄격한 예술이다. 찰나의 순간, 여럿의 무용수가 마치 한 사람 같은 동작을 보여주려면 철저하게 약속된 안무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수천, 수만 번씩 같은 몸짓을 거듭하는 단련의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바디콘서트’는 무용수가 객석까지 오가는,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작품이다. 하지만 돋보이는 건 바로 이런 자유를 쟁취하려는 고통의 몸짓들이다. 다프트펑크의 ‘이모션(Emotion)’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일렉트로닉 음악 특유의 반복되는 비트에 맞물려 보디빌더 같은 근육질의 무용수가 상의를 탈의한 채 홀로 중력을 거스르듯 하늘로 양팔을 휘두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무용수는 동작을 이어가는데, 적막해진 공연장엔 그의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이 춤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 현대미술 퍼포먼스 같다. 한국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을 대표하는 ‘바디스케이프(몸의 풍경)’ 연작을 떠오르게 한다. 캔버스에 등을 대고 팔을 뒤로 휘둘러 물감을 칠하는 그의 회화처럼, 음악과 감정에 가장 적확한 순간을 찾아가고 있어서다.
    ◇경계를 지우는 땀에 전 댄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이름에 들어가는 ‘애매모호한(ambiguous)’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김보람 대표가 유명 가수, 백댄서 등 방송음악으로 시작해 현대무용으로 옮겨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춤이 현대무용의 벽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란 표현이 조금 더 알맞다. 미국 래퍼 네이트 독의 ‘아이 갓 러브(I got love)’에 맞춰 한국무용에 쓰이는 한삼을 끼고 춤사위를 선보이거나 발레 동작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현대무용에 대한 불경에 가까운 춤들은 흥미롭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나오자 무용수들은 느린 박자에 맞추는 대신 빠른 동작의 춤으로 의도적인 부조화를 연출한다. 그래도 관객들은 주의 깊게 춤을 바라본다. 현역 무용수로선 은퇴를 바라볼 나이인 40대 김 대표가 무대 앞 관람석에 앉은 이들에게 땀을 튀길 정도로 열정적인 춤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현대무용계의 반항아 같은 작품이기 때문일까. 관객석에는 박찬욱 영화감독 등 유명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김 대표는 “체력도, 기량도 예전만 못해 연습할 때마다 죽을 것같이 괴롭다”며 “그런데도 멋지게 그만두고 싶은 날까지 계속 무대에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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