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켓인사이트 3월 7일 오후 5시 29분
법원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고려아연 경영진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지난 1월 임시 주주총회 결정을 대부분 무효라고 판단했다. 집중투표제를 제외하고 현 경영진이 통과시킨 이사 수 제한, 고려아연 측 이사 선임 등의 효력을 백지화했다. 영풍·MBK가 다시 경영권 확보에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벼랑 끝 전술’이 막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우호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 경영 실패로 여론 악화에 직면한 MBK파트너스를 둘러싼 주주들의 표심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 “호주법인 순환출자 적용 안 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가 7일 영풍·MBK 손을 들어준 것은 고려아연 측이 해외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해 영풍 측 의결권을 막은 것이 위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경영진은 임시 주총을 하루 앞둔 1월 22일 최 회장 측이 보유한 영풍 지분 10.3%를 고려아연의 해외 손자회사인 SMC에 기습적으로 매각해 ‘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C-영풍’의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다. 순환출자 기업의 의결권을 제한한 국내 상법의 허점을 활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25.4%의 의결권이 사라져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주도한 이사 선임, 집중투표제, 이사 수 제한 등의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법원은 SMC가 호주 회사법상 유한회사로 분류돼 주식회사 간 순환 출자한 기업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에 해당할 수 없다는 영풍·MBK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규정한 상법 제369조 제3항은 모두 ‘주식회사’에 해당해야 적용될 수 있다”며 “SMC는 유한회사의 성격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25.4%)의 의결권이 되살아났다.
다만 가처분 재판부는 해외 법인의 상법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고려아연이 다른 해외법인을 세워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 우려가 있다. 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영풍·MBK는 영풍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신설 유한회사에 현물 출자해 옮기기로 했다. 이날 영풍은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 전체를 신설 유한회사인 와이피씨에 현물 출자한다고 공시했다.
◇ 홈플러스 사태 변수 될까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의 판도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 법원이 임시 주총 결정 중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서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2인 이상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에게 의결권을 ‘주당 한 표’가 아니라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 준다. 소수 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이미 과반 지분을 보유한 영풍·MBK 측에는 불리하지만 나머지 주주들의 의사에 따라 의결권 지분이 7~8% 뒤처진 최 회장 측에서는 경영권을 방어할 수가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는 국민연금도 찬성했고,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법원이 효력을 받아들였지만 그 외 안건은 경영권 분쟁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다시 주총에서 주주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을 내라는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MBK 측은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총 이사진을 조만간 추천할 예정이다. 집중투표제를 감안해 17명 안팎의 이사 후보를 대거 추천할 방침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은 13명이다. 이 가운데 12명이 최 회장 측에서 선임한 인물이다.
변수는 이달 2일 홈플러스의 기습 회생절차를 단행한 MBK파트너스를 향한 ‘민심’이다.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최 회장 측 인사들로 고려아연 이사진이 굳혀지고 분쟁이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에 따라 이사회 장악을 자신할 수 없다.
차준호/최다은 기자
>>집중투표제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는 이렇게 부여받은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5명의 이사 후보가 출마할 경우 주주는 한 후보에게 다섯 표를 몰아줄 수 있는 구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