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05일 11: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 초 국내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신년사에는 이전과 달리 ‘리딩’, ‘신사업’, ‘해외진출’과 같은 성장 중심의 키워드가 사라지고, ‘내부통제’, ‘주주환원’처럼 안정성을 강조하는 단어가 주를 이뤘다. 이는 지난해 발생했던 크고 작은 금융사고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주환원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국내 금융기관은 지난해 2월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KRX 은행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10개 상장사 가운데 제주은행을 제외한 9개 상장사가 밸류업 계획을 공시했다. 금융 체계상 중요한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D-SIB) 가운데 비상장사인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가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금융업은 전통적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업종 중 하나다. 현재 PBR이 1배를 초과하는 금융기관은 메리츠금융지주 1곳뿐이다. PBR이 1배보다 낮다는 것은 현재 주가가 청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가 금융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나 수익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에도 불구하고 금융업은 여전히 낮은 PBR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이를 낮은 주주환원율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수익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주주환원율·보통주자본비율 통해 기업가치 제고
4대 금융지주회사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르면 금융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주환원율 제고와 보통주자본비율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주주환원율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주주에게 얼마나 많은 가치를 돌려주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주로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의 형태로 이뤄진다.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것은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줘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는 주가 상승과 기업 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대체로 50% 수준의 주주환원율을 목표로 한다.
금융지주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은 위험가중자산 대비 보통주자본의 비율로 산출한다. 이는 금융기관이 대출이나 투자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에 대비해 얼마나 충분한 자본을 확보했는지를 나타낸다. 보통주자본비율의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손실흡수 능력을 강화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금융당국 및 금융지주회사는 통상적으로 13%를 상회하는 보통주자본비율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주주환원율을 높이려면 배당금 지급이나 자사주 매입에 자본을 사용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보통주자본비율을 낮출 수 있어 상반된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목표하는 보통주자본비율을 달성하면서 주주환원율을 높이려면 장기적인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금융지주사는 위험가중자산이익률(Return on Risk-Weighted Assets, 이하 RoRWA)과 이에 기반한 사업포트폴리오 운용을 제시한다.
단기적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매몰되지 말아야
RoRWA는 금융기관이 감수하는 위험 대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 평가하는 지표다. 동일한 수익이 발생하는 자산을 보유하더라도 위험도가 낮은 자산의 RoRWA가 더 높게 나타난다. 이에 RoRWA를 높이려면 분자가 되는 순이익을 늘이거나, 분모가 되는 위험가중자산(Risk-Weighted Assets, 이하 RWA)을 줄일 수밖에 없다. 국내외 경제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순이익을 늘이기 어렵다면 결국 위험가중자산을 관리해 RoRWA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실제로 4대 금융 지주회사는 RWA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보통주자본 비율을 유지하고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RWA 관리 체계를 경영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 위험자산의 질적 개선, 자본배분의 효율화, 규제 대응 강화 등을 통해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위험가중치가 높은 개인 신용대출 및 중소기업대출 비중을 축소하고 주택담보대출 및 대기업 대출 비중을 높여 대출 포트폴리오의 위험 가중치를 최적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펀드 출자와 같은 고위험가중치 자산에 대한 적극적인 축소 정책 등을 통해 고위험 투자자산의 전략적 조정을 추진한다. RWA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계열사별로 목표를 부여하는 등 조직 차원에서도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있다.
다만 밸류업을 위해 단기적인 RWA 관리에 매몰된다면, 혁신 투자 축소, 글로벌 시장 진출 지연, 인수합병(M&A) 기회 상실 등 장기적인 성장 동력 및 수익성 개선을 위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RWA 가중치 400%가 부과되는 벤처펀드, 사모펀드에 대한 금융기관의 투자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으며, 이런 혁신투자 위축이 벤처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은행 및 증권계열사의 기업금융(IB) 부문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의 RWA 관리 정책으로 인해 지난해 상반기(1~6월)까지 활발하게 투자하던 금융지주계열 부실채권(NPL) 매입전문사인 하나F&I와 우리F&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투자가 급감했으며, 올해도 이런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NPL매입전문사로서 가지고 있는 자산회수 및 재투자, 부동산시장 안정화, 부실채권 관리 비용 절감 등 사회적 기능이 축소돼 금융권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래 경쟁력 위해 장기적 성장전략 세워야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 국내 사업 중심의 사업구조 개선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자본 투입이 필요한 해외 진출 및 확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서울의 아파트 담보부 가계대출은 현재 수익이 발생하고 위험도가 낮아 금융기관이 선호할 수 있다. 반면 동남아시아 은행의 지분 인수는 초기 자본 투입이 필요하고 단기적으로 수익이 낮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단기적인 안정성을 추구하다 보면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이는 해외 진출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자수익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은 비(非)이자수익을 증대하기 위해 M&A 전략을 세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는 이자수익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적인 성장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 자본 투입이 필요한 M&A 전략이 배제된다면 포트폴리오가 경직되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미래 경쟁력은 주주환원율과 수익률이 담보된 자본비율의 균형에서 결정된다. 이는 단기적인 위험가중자산(RWA)의 억제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단기적 RWA 억제에만 집중한다면 벤처투자 위축과 해외진출 지연 등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NPL 유동화채권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 산출방법 변경 등 일부 정책 펀드에만 적용되고 있는 RWA 특례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일정 부문 감면을 통해 금융지주회사의 해외수익 비중 확대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금융지주회사는 더 많은 글로벌 기회를 탐색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지주회사 역시 이런 환경 변화에 대응해 RWA에 대한 분기별 체계적 관리, 고위험 투자자산의 전략적 조정, 비은행 계열사의 사업모델 전환, 고부가가치 사업 강화 등 다양한 전략적 대응을 통해 양적 성장과 실적 관리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를 통해 금융지주회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