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당 대표의 행보가 말 그대로 갈지자다. 헷갈리다 못해 어지럽다. 그들이 내부 조율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던진 정책 슬로건은 하나같이 짧게는 몇 년의 국가 명운을 가를 것들이다. 여론 눈치 봐가며 적당히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은 아닌 것이다.근로소득세 개편론이 튀어나온 과정을 보면 이게 국회 과반을 차지하는 1당의 모습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어느 날 불쑥 “근로자가 봉”이라며 소득세 개편 주장을 꺼냈다. 직속 기구로 ‘월급방위대’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 월급자가 봉인 것은 맞다.
의아스러운 건 소득세 개편을 꺼내 든 배경이다. 작년 근소세 세수가 법인세 수입을 추월하는 역전현상이 벌어진 게 발단인데, “월급쟁이가 내는 세금이 기업 세금보다 많아서야 되냐”는 게 개편론의 이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소득세 세수는 제자리인데 법인세가 경기 악화 영향으로 줄어들어 그런 것이지 갑자기 샐러리맨 세 부담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물론 소득세 개편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동안 수차례 개편이 이뤄질 때마다 정치 논리가 개입돼 왜곡될 만큼 왜곡됐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각종 특별공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세제개편 때마다 샐러리맨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것들이다. 이 때문에 소득구간이 낮은 월급쟁이의 33%(2023년 기준 667만 명)는 각종 공제를 감안하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 연소득 3083만원(4인 가족 기준) 이하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게 조세의 제1원칙이고, 가급적 많은 국민이 조세 부담을 통해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문제가 있다.
근로소득자 3분의 1은 사실상 면세점에 해당하고, 고소득자 세율은 높다 보니 소득 상위 조세부담비율은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전체 소득세수 가운데 상위 10%의 부담 비율은 75.8%, 상위 1%는 45.9%에 달한다. 이런 왜곡된 조세원칙을 바로잡기 위해 박근혜 정부 때도 소득공제를 줄이는 식으로 개혁을 시도하려다 이른바 ‘거위털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후퇴한 적도 있다. 세제개혁이란 게 그만큼 어렵다.
민주당은 소득세 개편 방향으로 물가연동제를 거론하지만 이 역시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물가는 경기 상황과 수요 공급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하지만 세금은 한번 낮추면 올리기 어렵다. 각종 공제 역시 포퓰리즘에 의해 도입된 것들이라 없애기도 쉽지 않다. 과도한 공제로 소득세 세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물가연동제를 시행하면 과표구간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만큼 세수는 더 줄어든다. 물가연동제를 하려면 공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방향은 이미 제시돼 있다. 왜곡된 소득세 구조를 바로잡고 누진제 원칙은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근로자의 세 부담을 조금씩 현실화해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부담률은 3~4%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6~8%에 비해 낮다. 세목별로 봐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비 소득세수 비중이 낮은 반면 법인세수 비중은 높다. 소득세 비중은 높이고 법인세는 줄여가는 게 추세와 맞다. 법인세를 낮춰 기업 이익이 늘어나면 그것이 가계로 흘러 들어가 자연스레 소득이 증가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 눈감은 채 ‘근로자가 봉’이라는 선동적 구호를 내세워 소득세 개편을 추진할 경우 면제자 비율은 더 늘어나고, 세수 기반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 부담을 낮춰 적자가 커지면 결국 부채를 늘려야 하는데 ‘오늘의 부채는 내일의 세금’일 뿐이다.
지금 민주당과 이 대표를 보고 있으면 민주당 내부에 집단지성이란 게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책이란 건 치열한 내부 토론도 벌이고, 전문가를 불러 의견도 듣고 해서 내놓는 게 정상이다. 그런 과정은 생략한 채 어느 날 갑자기 당 대표가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검증도 안 거친 소득주도성장을 정권의 핵심 아젠다로 불쑥 들고나온 바람에 5년 임기 동안 우리 경제가 얼마나 고전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