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틀맨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는 이야기가 있다. 멋쟁이 남자라면 발끝의 예술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벨루티, 에드워드 그린, 알든은 패션에 관심 있는 남성이라면 한번쯤은 갖고 싶은 수제 명품화 브랜드들이다. 에드워드 그린은 1890년대부터 영국 신사들을 위해 제작된 브랜드이며 더비 슈즈로 유명한 알든은 미국 명품 구두 브랜드다.
알레산드로 벨루티(사진①)는 1865년 이탈리아 마르셰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고향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19세기 당시 파리는 창의적인 예술이 한껏 융성하던 곳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목공예 기술을 배우다가 마르세유 지방 출신의 구두 장인을 만난 뒤 구두 제작 기술에 매달렸다. 10년 동안 구두 제작에 몰두한 결과 1900년 알레산드로 벨루티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구두 장인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라인에 대한 미학적인 안목과 열정을 바탕으로 맞춤 슈즈의 기본이 되는 하드우드 라스트를 제작함으로써 장인정신이 깃든 신발 메이커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95년 새롭게 선보인 알렉산드로 레이스업 슈즈(끈으로 묶는 슈즈)와 함께 이 모델은 이후 벨루티의 상징이 되었다. 1928년 벨루티 아들인 토렐로 벨루티가 몬타보 거리 매장에 ‘벨루티, 명품 수제화’라는 간판을 걸면서부터 벨루티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 상제리제 인근 마베프 거리 26번지로 이사했다. 이 매장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토렐로 벨루티는 비스포크 슈즈 제작의 예술성을 기반으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완벽주의를 접목해 예술적인 섬세함과 슈즈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는 곧 독창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열망하던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이브 생 로랑, 앤디 워홀 등 사교장으로

창업자의 손자인 탈비니오 벨루티는 14세 때부터 벨루티에 입문해 구두 패밀리 비즈니스와 건축 공부를 병행했다. 그는 1959년 슈메이킹의 장인정신이 담긴 첫 번째 럭셔리 기성화를 선보였고 젊은층으로 벨루티의 고객을 넓혀갔다. 그는 “벨루티 하우스의 장인정신은 장인의 전통에 대한 존경과 아티스트의 창의적 도전에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60년대 후반 탈비니오의 사촌인 올가 벨루티는 넘치는 에너지와 예술적인 영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대담한 시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베프 매장의 일부는 쇼룸으로 일부는 파티 라운지로 사용됐다. 프랑수아 트뤼포, 이브 생 로랑, 피에르 베아제, 앤디 워홀, 칼 라거펠트 등 유명인들의 사교 장소이기도 했다.
올가는 파티나 테크닉을 완벽한 경지로 끌어올렸다. 1980년대에 처음으로 선보인 벨루티의 파티나는 대부분 블랙 또는 브라운에 국한되어 있던 남성 슈즈에 다양한 색채감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다. 벨루티의 파티나는 무한한 컬러의 다양한 재해석을 통해 특별한 나만의 슈즈를 만들 수 있었다. 벨루티의 파티나는 크림과 천연 염료를 이용한 특별한 테크닉을 거쳐 탄생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깊이감과 투명도를 더해가는 특별한 컬러로 유일한 나만의 슈즈를 완성시킨다.
구두가 달빛에 비치는 듯한 효과를 내는 이른바 ‘문왁싱(moon waxing)’ 컬러는 색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색의 깊이감을 더했다. 이를 통해 벨루티의 슈즈가 유일한 한 켤레가 되는 특별한 시그니처가 됐고 이는 올가의 전설적인 업적이다. 풍부하고 깊이감 있는 컬러를 표현하는 파티나는 1990년대 올가 벨루티가 컬러(사진②)를 창의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매우 유연하고 섬세한 베네치아 가죽을 개발하면서 더욱 완벽해졌다. 베네치아 가죽을 만들기 위한 카프 스킨은 벨루티 고유의 특별한 태닝 과정을 거쳐 가죽에 놀라운 유연성과 탄력성을 부여했고 풀 그레인의 코팅을 하지 않은 최상급 품질의 가죽을 선별한 후 가장 완벽한 부분만을 커팅해 제품 제작에 사용한다.
우선 상품의 가죽을 깨끗하게 닦은 후 여러 과정을 거쳐 가죽의 컬러를 탈색하고, 오랜 시간 동안 에센셜 오일과 천연 염료와 다양한 왁스로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염료와 영양 크림 등을 이용해 컬러를 입히는 작업이 시작되고, 이 후 다시 오랜 시간 동안 가죽 표면을 윤이 나게 하는 작업을 통해 컬러에 깊이감과 풍부함을 더하여 파티나가 완성된다. 네로 그리지오, 캐비어, 루즈 생테밀리옹과 같이 벨루티의 대표적인 컬러부터 1895년 알레산드로 벨루티의 첫 번째 슈즈에 사용되었던 따듯한 호박색을 띤 브라운 계열의 토바코 컬러까지 벨루티만의 독착성을 담은 창의적이고 광범위한 컬러 선택이 가능하다.
샴페인 돔 페리뇽으로 구두 닦아

앤디 워홀은 1962년에 탈비니오 베를루티에게 로퍼 한 켤레를 주문했고 올가는 찾을 수 있는 가죽으로 다른 신발 한 켤레를 만들기로 비밀리에 약속했다. 올가는 현대적인 로퍼를 디자인했고 이 스타일은 전위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이며 메종 벨루티의 상징적인 신발(사진③)로 남았다.
벨루티의 스웨이드 슈즈는 조약돌로 한번 워싱을 한 후에 사용하기 때문에 물에 닿아도 손상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구두를 마무리 폴리싱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최고의 샴페인 중 하나인 돔 페리뇽으로 구두를 닦는 것이다. 돔 페리뇽이 함유한 산 성분이 구두 케어 크림과 오일의 유분을 날아가도록 해 가죽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수명을 길게하기 때문이다. 벨루티의 수석 장인인 피엘 코르테는 “샴페인으로 구두를 닦는 것보다는 먹는 게 좋다”는 재치 있는 말을 남겼다. 1993년 LVMH그룹이 벨루티를 인수해 명품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자료 출처: berluti com, 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명수진, 삼양미디어)
류서영 여주대패션산업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