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정치 구호를 연상케 하는 이 글은 지난해 12월 10일 발행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교육지에 실린 투쟁 지침이다. 사업장에 이런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출퇴근, 점심시간에 선전전을 진행하라”는 행동강령도 들어 있다. 당시 한국 산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지만, 민주노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회사 성장이나 근로자 복지보다 정치적 이념 투쟁이 먼저인 한국 노동조합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란 평가가 나온다.

◇日 노조, 경제단체와 활발한 대화
민주노총보다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노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3월 공개된 한국노총의 공동 임단투(임금·단체협상 투쟁) 지침을 보면 ‘반노동 심판을 위한 투쟁과 협상 병행’ ‘불평등 해소와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조직적 투쟁’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한국과 비슷한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가진 일본의 노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일본 노조는 정치적 구호 대신 생산성 향상과 근로조건 개선 등 노사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회사 측과 협의한다.
최근 일본 주요 기업들이 큰 폭의 임금 인상과 근로복지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일본 최대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막무가내식 파업 위협’에 떠밀린 게 아니라 게이단렌과 활발한 대화를 통해 합의한 결과다. 실적이 좋아진 일본 기업들도 노조의 합리적인 근로조건 개선 요구에 마음을 열었다는 얘기다. 박용민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조사팀장은 “일본 노조는 일하는 방식 개혁 등 복리후생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체근로 허용하는 일본
쟁의행위 관련 제도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파업 기간에도 회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한국엔 없다. 일본에선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 수행을 위해 사업과 관계없는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고, 하도급과 파견도 허용한다. 한국에서 대체근로는 금지된다.직장 점거 파업으로 이어지는 상급 노조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과 관련해서도 한국에선 ‘허용’ 판결이 잇따르지만 일본에선 이슈조차 되지 않는다. 박 팀장은 “일본은 한국과 달리 쟁의행위 발생이 극히 드물어 직장 점거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단체가 주도하는 과격한 파업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한경협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근로자 1만 명당 파업 건수는 2010년 0.05건에서 2023년 0.1건으로 두 배가 됐지만, 같은 기간 일본은 0.02건에서 0.01건으로 줄었다. 2013~2022년 10년간 근로자 1000명당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도 일본은 0.2일에 그친 반면 한국은 35.2일에 달했다.
강성 노조는 한국의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5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당시 회원국 37개 국가 중 26위에 머물렀다.
◇제도 개혁을 통해 생산성 올려야
전문가들은 노동 제도 개혁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직된 노사 관계 탓이다. 대표적인 게 국회에서 계속 겉돌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 제도다. 한국에선 연장 근로시간을 주 12시간으로 제한하지만 일본에선 월 45시간, 연 360시간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특별 협정을 맺으면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다.‘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일정 임금 이상을 받는 근로자의 주52시간제 제외) 제도도 일본에서 시행 중이다. 일본은 연봉 1075만엔(약 1억300만원) 이상 증권사 애널리스트, 의약품 개발자, 엔지니어는 근로시간 제한, 초과근로 할증수당 적용 등에서 제외된다. 파견근로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은 대상 업무를 경비·운전 등 32개, 사용 기간은 2년으로 제한하지만 일본은 건설과 의료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파견을 허용한다. 기간 제한도 없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