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투자에 대한 불신은 단기 수익을 노린 자들의 얘기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기대감이 낮아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ESG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 이슈에 몰두하다 보니 큰 그림을 못 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장기투자 관점에서 ESG는 매력적일까.

5년 수익률 높은 펀드는
펀드 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식형 ESG 펀드의 5년 수익률은 42.49%다. 장기투자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가치주 펀드 109개 평균 수익률(38.53%)을 크게 웃돈다. 배당주 펀드(36.51%), 공모주 펀드(30.63%)도 ESG 펀드보다 수익률이 저조하다.
5년 수익률이 가장 높은 펀드는 한국밸류지속성장ESG펀드로 1년 수익률이 106.79%나 된다. 이 상품은 ESG 경영을 실천 중인 기업과 ESG 등급 개선을 통해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기대되는 기업에 투자한다. ESG 등급이 ‘B’ 이상 기업에 투자하도록 돼 있다. ESG 평가점수가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을 선별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설명이다.
주주가치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 주가에 재평가에도 공을 들인다. 삼성전자, 농심, 현대차2우B, 기아, 빙그레 등이 포트폴리오 상단에 담겨 있다.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67.35%), 삼성유럽ESG펀드(65.95%) 등도 수익률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2009년 출시된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의 경우 설정 후 수익률이 460%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식형 액티브 펀드 전체의 5년 평균 수익률이 35.35%인 점을 감안하면 ESG 투자의 경우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으로 꼽힌다”며 “긴 안목으로 투자처를 물색하는 것도 하나의 투자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기후 투자 기회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ESG에 속하는 여러 테마 중 ‘기후변화’를 장기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후 적응 테마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산해 LS증권 연구원은 “기후 적응 투자는 정치적 논쟁의 안전 지역이라는 점, 매몰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관점, 그리고 아직 기술과 시장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기존 ESG 투자나 그린테크 투자와 차별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실제 LS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역대 최악의 폭염을 겪은 인도의 경우 Nifty500 기업들의 콘퍼런스 콜에서 열파(heat wave)라는 단어가 언급된 사례가 80건에 달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폭염이 그만큼 기업경영과 향후 미래 전망에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해서다. 인도 대표 인프라 기업인 라센 앤 토브로(Larsen & Toubro)는 열파로 인해 노동자의 근무시간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언급했다. 레스토랑 체인 겸 배달업체인 조마토(Zomato)는 실적 발표에서 기온이 높은 오후 시간대 주문 자제를 권고하면서 마진율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우상향하는 폐기물 관리 산업 역시 기대되는 기후 관련 영역으로 꼽힌다. 재난 이후 복구를 위한 시장이 확대되면서 직접적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황 연구원은 “재난 발생 증가에 따른 재난 폐기물 증가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평했다. 지난해 10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발생한 홍수로 수백 대 차량을 비롯해 재난 폐기물로 도로가 막혔다.
스페인 정부는 110억 유로가량을 복구 지원 비용에 썼다. 미국 재난관리청은 올해 플로리다를 강타한 밀턴, 헬렌, 데비의 폐기물 처리 예산으로만 각각 9억2700만 달러, 3억7800만 달러, 1억200만 달러 등을 각각 배정했다. 유엔의 폐기물 관리 전망에 따르면, 2050년까지 통제 불가한 폐기물과 매립 폐기물이 2020년 대비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와 연관성이 높은 농업 관련 산업도 유망 투자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주거 가능 토지의 50%가 농지이며, 취수량의 70%가 농업에 쓰이고, 포유류의 90% 이상이 가축인 점은 농업의 기술발전이 자연보호에 필수적이면서도 그만큼 변화에 취약하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애그테크’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 기술과 신기술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단순 식품 산업에서 정보기술(IT) 바이오화학 등 첨단기술이 접목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대체육과 배양육 부문이다. 황 연구원은 “최근 배양육 부문에서는 무혈청 배양액 기술이 고도화되며 생산 단가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모사미트, 알레프팜스, 업사이드 푸드 등 비상 장 벤처기업들이 메인 플레이어이며, 타이슨푸드(업사이드푸드), 머크(모사미트) 등 상장사들이 주요 투자자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 1위 농기계 및 장비 기업인 디어앤컴퍼니는 대표적 기술 융합 사례다. LS증권은 “1837년 갈퀴와 삽 판매로 사업을 시작한 디어앤컴퍼니는 기계화, 자동화, GPS, IoT 기술을 넘어 최근 AI 기술까지 접목하며 대표적 기술 융합 사례를 보여준다”며 “기후 적응 관점에서 극한 기온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고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애그테크의 대표 상장지수펀드(ETF)로는 MOO, VEGI 등이 있다. MOO ETF는 MVIS Global Agribusiness 지수를 VEGI ETF는 MSCI ACWI Select Agriculture Producer IMI 지수를 추종한다. “MVIS 지수는 농업 관련 비즈니스를 통한 매출의 50% 이상이 발생하는 기업을 선별하는 반면, MSCI 인덱스는 식품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기업을 선별하는 방법론적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소비재, 산업재, 소재를 중심으로 식품, 가축 보건 사업을 하는 헬스케어 업종이 포함되기도 한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