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여권이 제기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 가운데,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이 과거 판사의 성향을 거론하며 "성향별 안배"를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대행 스스로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3일 한경닷컴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문 대행은 부산지법 판사 시절인 2003년 1월 18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사법개혁 논의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제는 대법원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대법관 인사는 그 정치적 역할을 감안하여 지역별, 기수별, 직역별 안배가 이루어져 왔으나 이제는 성향별 안배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며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과 함께 최고 법원을 구성하고 법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을 통해 이 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변화와 개혁이 이 시대의 당면한 요구로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법조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차제에 사법개혁에 관한 활발한 논의와 제도화를 통해 사법부의 발전을 도모할 때"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문 대행 등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싼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판단이 좌우되지 않는다고 강변한 바 있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다"며 "이에 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개인의 성향과 재판은 무관하다'는 헌재의 주장과 '성향별 안배가 필요하다'는 문 대행의 발언은 서로 상충한다. 헌재의 주장대로 재판과 개인의 성향이 무관하다면, 무 대행이 주장한 대로 성향별로 법관을 안배할 필요성이 전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 대행의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이라는 발언은 그가 2019년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판사는 기본적으로 우파지, 좌파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 것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문 대행의 이러한 발언은 당시 특정 성향의 판사들이 '대법관 인사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사법제도 개혁'을 주장한 이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법관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보성이다(박상훈 당시 정읍 지원장)"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공정성' 향한 의심의 시선
국민의힘은 문 대행과 헌재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헌법재판관 8인 중 3명이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 문 대행이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는 점 등을 특히 문제로 삼고 있다.문 대행은 2009년부터 사용하던 개인 SNS에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는 등의 글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도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며 "이러한 국민적 비판을 마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처럼 폄하하고 공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많은 국민들은 헌재가 민주당과 한편이 되어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며 "그러고도 대통령 탄핵이 어려워 보이자 억지로 자기편 한 명을 더 얹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