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급발진하다가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 한없이 삐뚤게 본다면 이렇게 평가할 수도 있겠다.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두고서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다의 줄임말) 기질을 가진 불쌍한 주인공 베르테르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고전은 언제나 메시지를 던진다. 베르테르는 ‘누군가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한 적이 있느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소설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베르테르’에선 이렇게 노래한다. “제 삶에 고통을 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요”라고 말이다. 어장 관리, 밀당 등의 말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에 베르테르는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베르테르’의 큰 줄거리는 원작 소설을 충실히 따른다. 감수성이 넘치는 베르테르는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발하임에서 롯데에게 첫눈에 반한다. 해사한 미소를 짓는 롯데는 베르테르와 문학적 취향이 같았다.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푹 빠지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은 피우지도 못한 채 절망이 된다. 롯데에겐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잊기 위해 마을을 떠나기도 하지만 자석처럼 이끌리듯 그녀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롯데는 이미 결혼한 뒤였고, 결말은 알다시피다.
소설이 곧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뮤지컬을 관람할 때는 다른 관전 포인트를 찾는 게 좋다. 뮤지컬 속 롯데는 소설에서와 달리 베르테르를 향한 애정과 내적 혼란을 보다 명확히 보여준다. “하나님, 제가 왜 이러나요. 나도 모를 설렘, 용서받지 못할 죄악인가요”라고 외치는 대목에선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롯데의 인간적 번뇌를 느낄 수 있다. 롯데는 베르테르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에게 입 맞추는 베르테르를 밀쳐내며 감정을 절제하는 소설 속 롯데와 다른 모습이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내 롯데를 지켜보는 알베르트의 찢긴 마음도 헤아려 볼 수 있다. 알베르트는 “당신만이 나의 불빛”이라고 노래하며 롯데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드러낸다. 이처럼 롯데와 알베르트의 감정까지 관객이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원작 소설이 베르테르의 1인칭 시점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 반해 뮤지컬은 다양한 노래를 통해 베르테르 이외 인물의 관점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르테르’ 무대는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형상화한 해바라기로 꾸며졌다.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은 꽃이지만 베르테르 그 자체를 표현하는 데 해바라기보다 어울리는 꽃은 없어 보인다. 다만 화려하고 웅장한 대극장 뮤지컬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무대가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베르테르가 마을을 떠난 시간 동안 롯데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충분히 표현되지 않다 보니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돌아와 사랑을 표현하고, 알베르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은 다소 급작스럽고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아쉬움에도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흡입력을 보완한다. 비장미를 극대화하는 무대 연출도 돋보인다. 롯데는 베르테르에게 책을 선물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던 노란 리본으로 포장하는데, 베르테르는 총에 이 리본을 감고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역시 소설에선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3월 16일까지 공연된다. 베르테르 역에는 엄기준·양요섭·김민석, 롯데 역에는 전미도·이지혜·류인아, 알베르트 역에는 박재윤·임정모가 출연한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