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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캐시리스와 시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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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캐시리스와 시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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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시대 화폐의 표준은 무게 3.65g짜리 데나리우스 은화였다.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시절 은화의 순은 함유량은 90%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160년께부터 은 함유량이 80%로 떨어졌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때인 200년엔 은 함유량이 61%까지 내려갔다. 후기 로마에서 데나리우스화를 대체한 안토니니아누스화의 은 함유량은 ‘은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2%(260년)에 불과했다.

    오랫동안 화폐 가치는 금화, 은화 속 금·은처럼 화폐를 만든 소재의 가치에 기반했다. 프랑스어에서 돈을 의미하는 단어 ‘아르장’이 은이라는 뜻을 지닌 것도 이런 이유다. 금과 은은 한닢 두닢 같은 주조 단위가 아니라 중량으로 가치가 매겨졌다. 프랑스·이탈리아의 옛 화폐 단위 ‘리브르’와 ‘리라’가 금속의 무게를 재던 ‘천칭’(라틴어 리브라)에서 유래했고, 영국 파운드화(£)가 무게 단위 파운드(lb)와 명칭이 동일한 것은 이런 시절의 유산이다.


    금속 소재의 값이 중요했던 까닭에 화폐의 역사는 위조화폐와의 투쟁사이기도 했다. 비싼 소재로 만든 동전을 갈고, 깎고, 자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싸구려 불순물로 가득 채운 위조 주화가 곳곳에서 양산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역사상 한 번도 도전받지 않은 경제법칙’(존 갤브레이스)으로 불렸다.

    주화의 액면가와 실질가치 간의 차익을 챙기는 데는 정부도 빠지지 않았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의 솔론이 6000드라크마어치 은 1달란트로 6300드라크마를 주조하며 주조 차익(시뇨리지)을 남기는 관례를 만들었다. 이후 주조 차익은 오늘날까지 정부나 중앙은행의 독점 권한으로 인식됐다. 모든 게 화폐의 액면가가 아니라 소재값이 중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은행이 이달 서울에 새로 문을 연 2개 지점을 현금이 전혀 없는 ‘캐시리스 점포’로 운영한다는 소식이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고 디지털 금융거래가 가속화해 돈을 모아놓은 공간인 은행에서조차 100원짜리 동전 하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수천년간 끄떡없던 화폐의 소재 가치가 순식간에 유명무실해졌다. 디지털 기술이 이끈 대변화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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