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129.68

  • 21.06
  • 0.51%
코스닥

919.67

  • 4.47
  • 0.49%
1/4

[토요칼럼] '애널리스트 입틀막' 그 후 2년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토요칼럼] '애널리스트 입틀막' 그 후 2년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투자 의견 BUY로 상향.’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이 지난 20일 에코프로비엠에 대해 내놓은 분석 보고서 제목이다. 여의도에 매일 차고 넘치는 게 매수 리포트지만, 낯익은 애널리스트 이름 때문에 눈길이 갔다. 그는 재작년 5월 에코프로비엠에 처음으로 매도 의견을 내 항의 전화, 악플, 조리돌림까지 십자포화를 맞은 당사자다. 배터리주 투자자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유명 인사가 됐다.


    당시 에코프로비엠 기세는 대단했다. 주가가 석 달 만에 500% 넘게 뛰어 삽시간에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가 됐다. 일명 배터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개미들의 멘토’로 군림했고, K배터리의 리스크를 거론한 애널리스트는 ‘공매도 세력의 부역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다.


    매도 보고서를 쓴 애널리스트에게 항의가 쏟아지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포모(FOMO) 광풍에 핀플루언서(금융 인플루언서)의 선동이 더해지면서 집단 공격의 수위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에코프로비엠의 지주사 에코프로에 첫 매도 의견을 낸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출근길에 ‘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회원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오랫동안 모든 증권사에서 2차전지주 리포트가 뚝 끊겼다. 되돌아보면 코미디 같은 일이다.


    한 연구원이 거의 2년 만에 매수 의견을 제시한 이유는 특별할 게 없다. 그때는 몇몇 K배터리주에 거품이 지나치게 끼어 있어서 그랬고, 지금은 비관론이 지나쳐 상황이 정반대가 돼서 그랬다고 한다. 애널리스트 본연의 직무대로 고평가 때는 매도 의견을, 저평가 때는 매수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란 얘기다. 달라진 것은 종목 토론방에서 육두문자 대신 ‘갓병화’로 부르는 사람이 생겼다는 정도?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란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일 정도로 한국 증시에 대한 개미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어쩌면 국장보다 더 신뢰를 못 받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걸 읽고 그대로 매매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증권사 리포트, 물론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비판이 매수 일색이라는 점. 지난해에도 국내 17개 증권사의 매도 의견 비율은 0.1%에 불과했다. 신영증권(0.7%), iM증권(0.7%), 하나증권(0.5%)을 제외한 나머지는 0%였다. 많이 지적받는 또 다른 포인트는 비현실적인 목표주가. 지루한 장세가 하염없이 이어졌는데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목표주가는 실제 가격과 40% 이상의 괴리율을 보이고 있다.

    어제오늘 나온 얘기도 아니어서 원인 분석까지 다 끝나 있다. ‘돈 못 버는 부서’인 리서치센터가 부정적 보고서를 쓰면 증권사의 법인 영업에 지장을 주는 탓에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분노한 개인 투자자들이 집단으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어온 전례도 ‘입틀막’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서치센터는 더 이상 선망의 일터도 아니고 기피 부서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올해는 실적이 안 좋다”고 쓰면 될 걸 “올해보다 기대되는 내년” 식으로 쓰는 모호한 보고서도 넘쳐난다. 돌려 말하는 행간까진 읽어내지 못하는 ‘주린이’들에게 보고서의 효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런 환경에서 매도 보고서를 냈다는 건 그만큼 깊은 고민을 거쳤다는 뜻은 아닐까.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때 대다수는 후자를 선택하는데 말이다.


    2년 전쯤 증권사 보고서의 품질이 논란이 되자 금감원은 ‘리서치 관행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업계 의견을 종합해 구조 전체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소식 없이 활동 기간이 끝났다. 2017년에도 똑같은 TF가 만들어졌다가 없어졌다.

    금융당국의 의지 부족도 문제지만 개인 투자자들도 조금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보고서 자체보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정확성을 냉혹하게 평가하는 투자자가 늘어난다면 애널리스트들이 더 바짝 긴장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공시 담당자가 소액주주 전화는 받지도 않는, IR(기업설명)에 인색한 상장사가 수두룩하다. 기업 정보에 그나마 접근권을 더 쥔 쪽이 증권사 직원들이다. 애널리스트가 직언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시장을 만든다면 ‘밸류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진 않을까.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