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나간 전공의들이 오는 3월 사직 전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아직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군미필 전공의에 대해선 수련이 끝날 때까지 입영을 연기해주는 특례도 내놨다. 독감의 유행으로 응급실 내원 환자가 폭증하고, 2025학년도 신학기 개강이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계에 내민 유화책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의료개혁 논의의 전면 중단 등 정부의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이번 대책이 전공의들의 대규모 복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분석이 나온다.
1만 사직 전공의 복귀 위해 특례 부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보건복지부와의 합동 브리핑에서 “사직한 전공의들이 수련에 복귀하는 경우 차질 없이 수련이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며 “의료계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의료 정상화를 위한 협의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이날 열린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사회부총리를 중심으로 복지부, 병무청 등 관계부처는 전공의 선생님들과 의대생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적극 검토해주시기 바란다”고 지시했다.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직 전공의들의 올해 3월 복귀를 유도하기 위한 특례를 내놨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사직 처리된 전공의들이 올해 상반기 전공의 선발에 지원할 수 있도록 수련 중단 후 1년 이내에 동일한 병원과 과목의 지원을 금지하는 수련 규정을 유예하기로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8일 기준 전체 전공의 임용 대상자 1만3531명 가운데 출근 중인 전공의는 1173명으로 전체의 8.7%에 불과하다. 나머지 1만여명의 전공의가 사직 후 일반의 신분으로 병·의원에 취직하거나 특별한 직업 없이 쉬고 있는데, 이들이 자신이 원래 근무 중이던 병원, 같은 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정부는 3월에 복귀한 전공의들의 경우 군 입영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병역 특례를 전공의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 상 군 미필 전공의들은 전공의 수련을 중단하게 되면 군 요원으로 선발·징집된다. 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1만여명 중 군의관이나 공보의로 입대해야 하는 인원은 3480명에 달한다.
정부가 이들 특례 조치를 내놓은 것은 3월 전 전공의들의 대규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을 상당 부분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12월부터 독감 등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면서 11월말 1만3000명 수준이던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1월 첫 째주 2만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4567명의 의대 신입생이 입학하는 3월 전에 집단 휴학 중인 의대생들의 복귀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정부가 특례를 부여한 이유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 공백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중증 수술을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 내 의료진의 피로도가 상당한 상황”이라며 “전공의 복귀로 진료를 정상화하고 중단됐던 교육·수련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원 제로베이스에서 검토”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 부총리는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나간다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도 의료인력 수급 전망과 함께 대다수의 학생들이 2024년에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점, 각 학교 현장의 교육여건까지 감안해 제로베이스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화로 의료 인력 부족이 심화된다는 증원의 명분은 그대로지만,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올해 1학년의 경우 7500여명의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특수성을 감안해 정원 규모를 보다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도 증원 규모는 의대 증원 결정 전인 3058명으로 동결하고, 의료계와 함께 중장기 추계를 수행해 증원 규모를 다시 정하자는 의료계의 요구도 협의에 따라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유화책이 전공의들의 대규모 복귀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아직 회의적 시각이 크다. 정부는 작년 7월에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철회와 9월 복귀시 수련 특례 부여 등 유화책을 내놨지만, 복귀를 지원한 전공의는 104명에 불과했다. 복귀 전공의에 대한 의사 커뮤니티 내에서의 ‘조리돌림’등 내부적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의대 교수들까지도 전공의 선발을 ‘보이콧’하는 등 반발 기류가 컸기 때문이다. 의협 등 의사 단체들이 의료개혁의 잠정 중단을 대화 참여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등 강경 기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전공의 복귀를 막는 요인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