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다시 발명합니다.” 2007년 아이폰이 공개되었을 때 스티브 잡스의 선언이다. 당시 아이폰은 또 다른 휴대폰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잡스의 눈에는 휴대폰의 새로운 미래가 선명히 담겨 있었다. 아이폰은 통신 산업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초대 편집장 조엘 커츠먼(Joel Kurtzman)은 불확실성 시대에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소트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소트 리더십은 ‘독특한 통찰과 전문성으로 업계 담론을 이끌고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소트 리더십의 3가지 요소
첫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다.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인 통찰. 이는 전통적 리더십에서도 강조하는 덕목이지만 소트 리더십의 통찰은 그 대상과 영향력의 범위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 리더십은 리더가 속한 ‘조직의 맥락’ 내에서 통찰이 발현되길 기대한다. 이에 반해 소트 리더십의 통찰은 조직의 경계를 넘어 ‘업계 또는 시장’ 전체로 확대된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통찰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잡스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잡스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사용자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이폰 출시 당시 휴대폰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처럼 물리적 키보드를 사용하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터치스크린을 떠올린다. 이 아이디어는 시장 조사나 고객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가능성과 인간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다. 잡스의 통찰은 통신 산업 뿐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사용자 경험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이제 어디에서도 물리적 키보드를 갖춘 스마트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에 터치스크린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이자 기본이 되었다.
둘째, ‘전문성’을 통한 새로운 질서 창출이다. 소트 리더십에서 말하는 전문성은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것 그 이상이다. 전문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헤지펀드는 고액 자산가나 기관 투자자가 주 고객이며, 고수익을 쫓는 과정에서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투자 전략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그러나 헤지펀드 업계의 거장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자신의 펀드에 ‘급진적 투명성’을 도입했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내 모든 미팅을 녹화하는 한편, 펀드의 성과를 대중에게 공유한 것이다. 투명한 운영 방식은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헤지펀드가 대중에게 상세히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운영의 투명성은 헤지펀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달리오는 뛰어난 전문성으로 헤지펀드 업계를 변화시켰다. 폐쇄적 문화를 협력적으로 바꾸며 규제 당국과의 관계를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업계 내 자발적으로 규제를 준수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셋째, 비전 실행 과정에서 나오는 ‘영향력’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자신이 맡은 조직에 집중한다. 따라서 어떤 조직을 맡는지, 그 조직의 규모가 어떠한지에 따라 리더십의 범위가 결정된다. 팀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팀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본부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본부의 팀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소트 리더십의 영향력은 담당 조직의 규모에 한정되지 않는다.
잭 웰치는 전통적 리더십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20년간 GE의 CEO로 재직하며 ‘경영의 달인’으로 불렸다. 워크아웃 프로그램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스택랭킹 평가 시스템은 엄정한 성과평가 방식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한 조직’의 ‘최고 경영자’로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론 머스크는 이와 다른 양상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한 기업의 CEO라는 직위에 국한되지 않고, 자동차와 우주 산업 전반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집중한다. 한때 대다수의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를 틈새시장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지구상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을 찾겠다는 비전을 가진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양산에 성공하자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소트 리더십은 리더의 영향력을 한 조직에 한정 짓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직위를 넘어, 비전을 좇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의 범위를 확장한다. 머스크의 사례는 소트 리더십이 산업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사회의 미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트 리더십을 향한 여정
태어날 때부터 소트 리더인 사람은 없다. 하루아침에 리더 반열에 오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탁월한 소트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리더십의 핵심을 깨닫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그 원리를 현장에서 실천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해가는 여정이 필수다.
소트 리더십의 기본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이다. 리더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학습에 주력하되,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의 씨앗을 심고, 최신 동향을 살피며,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운 비활성 지식(inert knowledge)에 그치기 쉽다. 이론을 꿰고 있다고 해서 복잡한 문제나 위기 상황에 전문성이 술술 발휘되진 않는다. 자전거 타는 법이나 와인 감별법과 같은 기술을 책으로만 배우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이론적 학습과 더불어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소트 리더로 가는 여정의 궁극적 목표는 혁신적 사고와 비전 개발이다. 혁신적 사고의 핵심은 문제에 대한 창의적 접근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접근법을 “우리가 만든 문제는 그것을 만들 때와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또한 단기적 이익이나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의 산업과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통찰과 전문성, 영향력을 갖추며 성장해온 리더가 소트 리더십을 완성하는 근간은 신뢰에 있다. 신뢰는 리더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다.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저서 《위대한 리더의 7가지 조건》에서 ‘진정성’을 첫 번째 요건으로 꼽는다. 진정성은 리더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쌓인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컨설팅사 에델만의 신뢰 바로미터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최고 경영진이 진정성 있는 리더십을 보일 때 직원들의 신뢰도는 무려 75%나 증가한다.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모든 곳에서 디지털과 AI를 말하지만 개인, 기업, 사회 모두가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커지는 두려움만큼 사람들은 혁신적 리더십을 발휘해줄 리더를 기대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리더인가. 전문성을 갖추고 혁신을 이끌고 있는가. 진정성 있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만의 통찰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이제, 소트 리더십의 여정에 발을 내디뎌보자. 지금까지 쌓아온 당신의 경험과 리더십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리더십에 집단 지성을 더하고,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해보자. 소트 리더십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주수 휴넷리더십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