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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국가들의 올해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이 역대 최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각국은 앞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면서 뒤에선 러시아의 전쟁 비용을 대준 셈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자국산 LNG를 대량으로 수입하지 않으면 유럽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유럽 에너지 기업들 입장에선 정부의 별다른 규제가 없는 지금으로선 싼값의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산을 수입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러시아산 LNG의 싼 값에 못 이겨
21일(현지시간) 해운·에너지 데이터 기업 케이플러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 중순까지 EU 각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LNG가 1650만톤(t)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수입이 대폭 줄어들었고,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이 사실상 금지된 것과 달리 러시아산 LNG 수입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어서다. 12월 중순까지 유럽의 러시아 LNG 수입 물량은 지난해 수입량은 1518만t보다 8.7% 많은 수준이다. 종전 최대치인 2022년 1521만t보다도 훨씬 많은 수준이다. 에너지경제 및 금융분석 연구소(IEEFA)의 아나 마리아 잘러-마카레비츠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놀랍게도 러시아산 LNG 수입을 점진적으로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렸다"며 "유럽이 '당황한' 탓에 여전히 더 저렴한 러시아산에 대한 의존을 끊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전쟁 이전에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의 약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 화석 연료의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재를 가했다. 다만 파이프라인 가스를 포함한 러시아로부터의 전체 가스 수입은 아직도 EU 가스 공급의 약 1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항구에 도착하는 LNG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EU 기업들은 올해 주로 현물 시장에서 러시아산 LNG 구매를 늘렸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라이스타드에 따르면 EU의 러시아산 LNG 수입 물량 가운데 현물 계약의 비중이 작년 23%에서 올해 33 %로 대폭 높아졌다. 라이스타드의 크리스토프 할서 천연가스 담당 애널리스트는 "러시아 야말 터미널에서 유럽으로 운송되는 LNG는 미국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오는 가스보다 가격이 상당히 낮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은 제3국 재수출까지 벌여
심지어 유럽으로 수입된 러시아산 LNG가 모두 유럽에서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일부 에너지 기업은 러시아산 LNG를 재수출해 이익을 남겼다. 올해 프랑스로 들어온 LNG 물량은 2023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부분 덩게르크항을 통해 들어왔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인 EDF와 토탈에너지, 독일 국영 에너지 기업 세페가 이곳에 터미널을 운영한다. 벨기에도 러시아산 LNG의 두 번째로 큰 수입국이다. 벨기에 지브뤼헤항은 북극에서 사용되는 쇄빙선에서 일반 화물선으로 LNG를 환적하는 주요 거점이다. EU 집행부는 뒤늦게 러시아산 LNG를 비(比) EU 국가로 환적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합의해 내년 3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해 <!--StartFragment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EndFragment --> 등 발트 3국은 러시아산 LNG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도 다른 나라의 기업이 수입해 네덜란드 등에서 재기화시켜 가스관 망에 주입해 혼합된 러시아산 가스를 사용하는 셈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달래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EU가 미국산 석유와 가스를 대규모로 구매하지 않으면 유럽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EU와 영국의 LNG 수입 물량 가운데 미국산 비중은 2021년 27%에서 지난해 48%까지 급증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